이념이 뭐길래[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63〉피에트로 마르첼로의 ‘마틴 에덴’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1950년대의 이탈리아 나폴리. 뱃사람 마틴은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못 마쳤지만 훤칠한 외모와 의협심으로 인기가 많다. 한 남학생을 깡패로부터 구해준 일로 그의 누나 엘레나를 만나고, 상류층의 기품 있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문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마틴은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당신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싶어요”라고 고백하고, 일하는 틈틈이 독학한다. 금세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작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갖는다. 혼자서 습작을 거듭하던 어느 날, 그의 글이 잡지에 실린다. 종전 직후의 정치적 혼란기에 노조는 연일 파업을 하고, 정부는 탄압으로 힘겨루기를 하던 때라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저명한 사회주의자는 그를 후계자로 키우려 한다.

마틴과 엘레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마틴은 세상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기 시작한다. 엘레나가 좋아하는 영화를 사회의 비참한 면을 외면했다며 폄하한다. 그녀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던 그가 그녀의 장점을 단점으로 여긴다. 그녀의 환경을 동경했으면서 이제는 그녀를 둘러싼 부유함에 적개심을 갖는다. 자신의 빈곤이 엘레나와 같은 부자들 때문이라고 믿는다.

집단주의를 혐오하는 마틴은 사회주의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표방하지만 개인의 평등보다는 노동조합이라는, 간판만 바뀐 자본주의 집단이라고 비판했는데, 신문기자의 농간에 의해 열혈 사회주의자로 포장된다. 그러자 출판사들이 그의 소설을 앞다투어 출간한다. 책들은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긴다. 마틴은 자기네 입맛대로 해석하는 팬들을 역겨워하면서도 그들의 환상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둔다. 부와 권력을 혐오하는 글을 쓰면서도 그것을 두 손에 움켜쥔 자신이 역겨운 마틴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살며, 술과 과로로 몸을 망가뜨린다. 엘레나가 다시 찾아오지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순수함과 열정을 다 잃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운 마틴은 그 분노를 그녀에게 퍼부으며 매몰차게 쫓아낸다. 엘레나를 보낸 후 마틴은 노을 지는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개인을 하나의 이념 안에 가두는 게 가능할까? 평생 안 변할까? 무엇보다도 그런 일이 꼭 필요할까? 꼭대기에 앉고 싶은 이들이 세력을 불리기 위해 편 가르기를 하는 건 아닐지? 이념이 뭐라고…. 사람 있고 이념 있지, 이념 위에 사람 없다. 이념 뒤에 숨는 인간일수록 비겁하고 교활하다. 엘레나의 집에서 마틴을 가장 무시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집사였다. 자신보다 하층민인 마틴이 주인의 손님인 것이 못마땅해서다. 마틴도 지식이 쌓일수록 동료였던 노동자들을 자기 밑으로 보고 선을 긋는다. 성공할수록, 자신이 혐오하던 엘레나의 가족을 닮아간다.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니다. 각자의 됨됨이다.

이정향 영화감독
#이념#피에트로 마르첼로#마틴 에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