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서 한국은 인권 중시국으로 신뢰 못 받는 게 사실"[이진구 기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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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록 전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서창록 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은 “인권외교는 일관된 원칙 아래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며 “이번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은 그런 원칙 없는 행동이 오래 쌓여 벌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창록 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은 “인권외교는 일관된 원칙 아래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며 “이번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낙선은 그런 원칙 없는 행동이 오래 쌓여 벌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달 중순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낙선했다. 2006년 초대 이사국에 선출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4자리를 놓고 6개국이 출전한 선거에서 우리는 5위에 그쳤다. 서창록 전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은 “근본적으로 역대 정부들이 인권외교를 소홀히 한 결과가 쌓인 탓”이라고 말했다. 2014∼2020년 두 차례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을 역임한 그는 현재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당신에게는 더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2006년 인권이사회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3연임 금지 규정으로 2012년, 2019년 두 번 쉬었을 때 빼고는 모두 당선됐다. 더군다나 방글라데시 몰디브 키르기스스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등과의 경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 탈레반이 여성들 학교도 못 가게 하는 나라다. 다 지고 그런 나라 하나 이겼으니….”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물론 원인은 복합적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소홀했던 전임 정부 탓이라는 의견도 있고, 현 정부의 인권외교 부재를 꼽는 사람도 있다. 외교부 말대로 너무 많은 국제기구 선거에 뛰어들다 보니 선택과 집중에 실패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근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역대 정부들의 관심 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인권외교 기반을 충분히 다지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 (우리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다.) “스위스 제네바는 유엔인권이사회뿐만 아니라 수십 개의 분야별 국제기구와 수백 개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이 있는, 매년 3000여 회의 국제회의가 열리는 다자외교의 중심지다. 그래서 170여 개국이 상주 대표부를 두고 있다.”

―갑자기 제네바 이야기는 왜 꺼낸 건가. 우리도 주제네바 대표부가 있지 않나.

“있는데… 인권 담당자는 달랑 세 명이다. 내가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할 때 보니, 우리 외교관들은 위원회에서 중요한 협의를 하는데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가 뭔가.) “인원은 적은데 업무가 너무 많은 탓도 있고, 한국에서 높은 분들이 오면 의전에 투입되느라 못 오기도 했다. 또 서기관들은 대부분 2년도 채 안 있고 떠난다. 초기에는 인권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해 좌충우돌하며 배우는데, 그나마 조금 익숙해질 때면 가는 거다. 외교부 본부에도 인권 담당 사무관은 4명뿐이다.”

―현안 따라가기도 힘들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관련해 벌어지는 많은 사안을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 외교부는 전략 실패라고 하는데…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그림을 못 보는데 무슨 전략을 짜겠나. 그런 상황에서 마침 후보국들도 만만해 보이니 ‘설마…’ 하다가 떨어진 거지.”

서창록 교수(왼쪽)와 카타리나 파벨 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 의장.
서창록 교수(왼쪽)와 카타리나 파벨 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 의장.


―당신 같은 전문가들이 도와줄 수도 있지 않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자문은 한다. 하지만 긴박한 결정을 할 때는 외부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번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안다.” (외교부는 올해 4대 중점 선거 중 하나라고 했는데 전 자문위원에게 자문도 안 구했다는 건가.) “중요한 이슈들이 매일같이 있다 보니 직원들이 특정 사안을 고민하고 공부할 겨를이 없다. 누군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사안별로) 외부 전문가 집단도 만들고 자문도 구할 텐데 그런 시스템이 없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2015년에 만났던 오스트리아 인권 담당은 아직도 있더라. 그러니 아는 것은 물론이고, 인적 네트워크도 얼마나 넓겠나. 선진국은 협상도 선거운동도 그런 사람들이 한다. 내가 2020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당선됐는데, 일본 위원에게 물어보니 선거 3년 전에 외무성에서 의사 타진을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당선되는 데 필요한 훈련과 지원을 해줬다는 거다. 외국에서 관련 공부도 시켜주고, 제네바에서 활동하게도 해 주고….” (당신은?) “나 혼자 개인 플레이로 뛰었다.”

―우리 인권 외교가 오락가락이라는데, 현실을 고려하다 보니 그런 건가.

“노(NO), 원칙과 실력이 없어서다.” (원칙과 실력?) “인권은 그 무엇보다도 상위에 있는 가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한 채 존재할 수도 없다. 인권 유린을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도우려면 탈레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그 나라가 가진, 인권에 대한 일관된 원칙이다. 그 원칙 아래서 인권 외교를 추진해야 실력도 생기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게 된다. 국제적 신뢰가 있으면 개별 사안에서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고 앞뒤가 다른 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힘이 모든 것인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수호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원칙이 없다. 그러니 실력을 쌓을 수도 없다.”

―인권에 대한 원칙 부재가 실력 부재로 이어진다는 게 무슨 말인가.

“지난달 초 유엔 인권이사회가 중국의 신장위구르족과 소수 민족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혐의와 관련한 토론 개최 여부를 묻는 투표를 했다. 우리는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후 같은 사안에 대한 유엔 총회(제3위원회)의 규탄 성명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바뀐 이유가 있나.) “앞뒤가 안 맞을 때마다 쓰는 말이 있지 않나.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외교부도 궁색한 거지.”

―제반 상황이 뭔지는 말 안 하던데.

“한 사회가 가진 인권에 대한 신념은 오랜 시간 공들인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다. 개별 사안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것은 그 흔들리지 않는, 확립된 가치관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는 없지만 기준이 있으니 입장을 달리해도 많이 벗어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변명도 어느 정도는 남들이 보기에 이해가 가게 만든다. 그게 실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신념은 없고, 위정자에 따라 입장이 완전히 바뀌니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외교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들의 집단이지만, 앞뒤가 완전히 다른데 무슨 재주로 논리를 만들겠나. 사실 외교부도 불쌍하다.”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참여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하든 말든 일관돼야지, 했다가 안 했다가 하면 어떻게 하나. 더군다나 우리 문제인데. 얼마 전 있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인권 침해 규탄 결의안에 불참한 것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인권의 뜻이 뭔지 궁금하다. 그냥 정치적 수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창피한 말이지만, 우리 생각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같은 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다.”

―문재인 정부는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흉악범들이라 추방했다고 했다.

“설사 흉악범일지라도 돌려보냈을 때 박해받을 게 분명하면 안 보내는 게 국제인권법상 기본 원칙이다. 백번 양보해 흉악범이라 돌려보낸다고 해도, 정말 흉악범인지 절차를 거쳐 면밀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보냈다.”

※2019년 11월 2일 탈북 어민 2명이 해군에 나포됐다. 이들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정부는 같은 달 5일 북측에 추방 통보를 한 뒤 7일 인계했다. 이들은 고문 끝에 참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자칭 진보라는 정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근혜 정부 시절 내가 주로 진보 진영에서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북한 인권 평화 모임’이란 걸 만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잘못했던 것도 반성하고, 제대로 된 북한 인권 운동을 하자는 취지였다.” (‘제대로 된’이라니?) “앞서도 말했지만 인권 정책은 원칙을 확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보수도 진보도 북한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많이 참여했다.” (결과를 보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물어봤더니… 북한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는 분위기라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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