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유권 정의, 무권 불의’ 시대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1-04-09 03:00수정 2021-04-0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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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뢰받는 지도자를 가졌나
‘정의와 공정’이 뿌리내렸다고 믿는가
정치존립의 기반 ‘정의’가 사라져간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역사는 심판이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가 심판하고 미래가 현재를 심판한다는 뜻이다. 개인은 사회의 심판을 받고 국가는 세계사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지금 우리는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치 않으면 국민이 심판한다’는 교훈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를 주장하고 등장했던 나치 히틀러와 독일이 그랬다. 공산사회주의를 신봉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도 이 같은 길을 밟았다. 북한의 김씨 정권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미화시켰다. 지금은 존폐의 기로에 도달했다. 그런 국가의 지도자들은 지도자의 위치에서 지배자로 변신하고 마침내는 독재자의 길을 택한다. 이런 국가들이 겪는 공통된 과정이 있다. 이념국가를 형성, 완성시키려는 자신들의 정치이념을 위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희망인 휴머니즘에서 일탈하거나 거부한다.

휴머니즘에는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정해진 목표가 없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항상 방향을 설정하며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간다. 그러나 구소련, 현재의 중국, 북한은 주어진 이념을 설정하고 그 이념을 위한 정치·경제의 방향과 방법을 따른다. 그 역사적 과정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나의 길과 방향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마치 강물은 가능하다면 직선으로 바다로 가야 하듯이. 이런 이념주의를 신봉하고 따르면 휴머니즘의 정신에 위배되거나 역행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의 가치는 이념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인권의 절대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모든 정치·경제 활동의 주체는 주권자다. 공산국가에서는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정권이 정치의 절대 주체가 되고,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정권을 위한 위치로 전락한다. 이념이 목적이기 때문에 국민의 자율성이나 의도는 설자리가 없어진다. 자유민주주의의 훈련을 받은 국민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북한이 이미 그런 사회가 되었고 마오쩌둥과 현 중국 정권 지도자들도 같은 길을 택하고 있다. 홍콩이나 대만이 반(反)중국 운동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선택과 자율성을 상실하며 정권은 이념 달성을 위해 진실과 정의의 질서를 유린하게 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사례를 살펴보는가. 북한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안에도 소수이기는 하나 자유민주주의에 회의나 불만을 갖는 정치인들이 중국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이 민족의 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착각하는 정권욕의 노예가 된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는 그 정치적 해결을 언급하기보다는 역사의 상식적 과정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이미 우리 자신이 그런 선택과 심판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두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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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의 생각 있는 국민들은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을 정치 지도자로 믿고 있는가. 정직과 진실이 과거보다 증대했다고 인정하는가. 천안함에서 아들을 조국에 바친 한 어머니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누구의 소행인가’라고. 그 물음은 아직도 남아 있다. 정부의 입장 이전에 대통령의 진심을 듣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북의 김정은에게도 왜 그랬느냐고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기념식 때마다 국민에게 많은 것을 언약한다. 그러나 그 결과와는 일치하지 못한다. 이런 불신은 국내적인 문제를 넘어 국제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 책임자들이 정의와 공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믿는 국민이 있는가. 우리가 한 일은 모두가 정의이고 다른 정권이나 너희들이 한 일은 불의라는 자세에서 공정을 기대할 수 있는가. 상식은 버려지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에 뛰어들어 나라가 혼란에 빠져 ‘유권(有權) 정의, 무권(無權) 불의’라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정치존립의 기반인 정의는 우리 시대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인권에 있다. 인권은 휴머니즘의 핵심이다. 유엔과 전 세계가 인권은 현재의 과제이면서 역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믿는다. 그 인권 영역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북한동포의 자유와 인간애가 보장되는 인권운동은 인류의 시급한 과제이며 우리 동포를 위한 절체절명의 의무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가. 어떤 때는 북한정권을 위해 북한동포를 외면하는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미 유엔과 자유세계의 기준으로는 한국이 인권을 존중시하는 선진국 대열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인권문제를 외면하면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어지며 휴머니즘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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