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르탱과 모리의 공통점[오늘과 내일/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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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 근대올림픽 창시하며 여성 배제
모리는 여성 비하하며 그게 문제인지 몰라

박형준 도쿄특파원
박형준 도쿄특파원
지난달 초 일본에서 열린 ‘하코네 역전마라톤’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도쿄에서 출발해 하코네를 찍고 돌아오는 217.1km 코스를 10개 구간으로 나눠 이어 달리는 경기인데, 21개 대학이 맞붙었다.

9번째 구간을 끝낸 시점에서 1위 소카대는 2위 고마자와대에 3분19초 앞서 있었다.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뒤집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10번째 구간 23km 코스에서 고마자와대 선수는 역전 우승을 했다. 인터넷에 ‘기적’이란 단어가 수두룩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선수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고마자와대 오야기 히로아키(大八木弘明) 감독의 응원 메시지였다. 그는 승합차를 타고 선수 옆을 따라가며 목이 쉬도록 응원했다.

“(출발 후 13.3km 지점에서) 1분57초 차이야. 달려. 역전할 수 있어.”

“(1위 선수가) 보인다, 보인다. 침착하게 달려. 15초 차이다. 남자라면 달려.”

“(1위 선수를 앞지르자) 해냈다, 해냈어. 너는 남자다.”

일본 언론들은 ‘너는 남자다’를 감독의 애정이 담긴 메시지로 묘사했다. 주위에 물어보니 성별의 의미가 아니라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위화감을 느낀다. 왜 멋진 사람을 남자라고 부를까. 이런 의식구조를 갖다 보니 일본에서 남녀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 아닐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의과대는 2006년 입시부터 여성 수험생에게 20% 낮게 점수를 준 사실이 2018년 드러났다. 결혼하면 부부가 같은 성(姓)을 가져야 하는데, 열이면 열 부인이 남편의 성으로 바꾼다. 여성이 선거에 출마하면 여성조차도 그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작년 10월 여성 국회의원(양원제일 경우 중의원 또는 하원의원 기준) 비율은 9.9%에 그친다. 프랑스(39.5%), 영국(33.9%), 미국(23.4%), 한국(19.0%) 등에 비해 낮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이 최근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제가 커지자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한다”고 말했지만, 질의응답에선 ‘내 발언이 뭐가 문제냐’는 투가 느껴졌다. 오야기 감독이 뛰어난 선수에게 “너는 남자다”라고 외쳤다면, 모리 전 위원장은 ‘여성은 남편을 모시고, 집안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스포츠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이었다. 첫 근대 올림픽이었던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는 ‘제로(0)’였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선 997명의 출전 선수 중 여성은 22명에 그쳤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대중 앞에서 여자 경기를 보여주는 것은 대회 품위를 떨어뜨린다”, “여성의 역할은 우승자에게 꽃다발을 걸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선수들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여성 선수 비율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10%를 넘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20%를 넘었다. 마라톤(1984년), 유도(1992년), 축구(1996년), 역도(2000년), 레슬링(2004년), 복싱(2012년) 등에도 여성이 출전할 수 있게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처음으로 26개 모든 정식 종목에 여성이 출전했다.

올해 7월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은 여성 선수의 참가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유도, 탁구, 경영(競泳), 트라이애슬론 등 종목에선 남녀 혼합 종목도 신설됐다. 한 팀에서 남녀 선수가 같이 뛰는 것만큼 남녀평등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제도는 훌륭하게 갖췄다. 다만, 일본 국민들의 잠재의식과 일부 사회 지도자의 성 인식에서 100년 전 쿠베르탱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형준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쿠베르탱#모리#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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