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발표된 실업률은 10.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는 2026년 10월 고점 대비 38% 하락한 상태다.”
지난주 미국 월가를 뒤흔든 화제의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트리니 리서치의 ‘글로벌 지능(intelligence) 위기’ 보고서다. 경제위기가 덮친 2028년 6월 30일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인공지능(AI)이 경제를 망쳤는지 서사 형식으로 풀어낸 이색 보고서다.
여기에는 미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에 다니다 해고돼 우버 운전기사가 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고소득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대량 실업과 소득 급감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을 붕괴시켜 2008년 금융위기가 재연된다고 나온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란 기대와 달리, 실업자가 가득한 세상에서 소비는 줄고, 정부는 재정위기를 맞이한다. AI발 경제위기, 섬뜩한 경고
미국의 올 1월 실업률은 4.3%이니 시트리니 보고서는 말 그대로 ‘상상’이다. 시트리니는 월가의 전통 리서치 기관이 아닌 온라인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서 주목받은 곳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나오자마자 소셜미디어로 확산되더니 미 증시도 흔들어놨다.
우리 모두의 불안한 한구석을 찔렀던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AI에 과잉투자해 놓고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라는 거품 우려가 불안을 자극했다면 이제는 ‘인간이 AI보다 쓸모없어진 미래 경제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존재론적 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가족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주고 필요한 자료를 척척 찾아주던 친구 같던 AI가 자율형 에이전틱AI로 진화하며 나의 밥그릇을 빼앗을 것이란 공포다.
이런 섬뜩한 예언은 과거에도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2015년에 낸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무용 계급(useless class)’ 시대를 내다봤다. 적어도 산업화 시대 ‘무산계급’은 노동이라도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 시대 대다수 인간은 아예 시스템 밖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현실화되는 일자리 파괴
인간이 무용계급으로 전락하고, 2년 만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예언은 다소 과장됐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안을 자극하는 이유는 실제 화이트칼라 중심의 대량 해고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세운 핀테크 기업 블록이 임직원의 40%를 한꺼번에 해고해 실리콘밸리가 뒤집어졌다. 이른바 ‘AI발 구조조정’이 이유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고가 어려운 구조 탓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규 채용 축소와 임원 감축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변호사, 회계사 등 지식 기반 전문직인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 고용이 전년 동기 대비 9만8000명 줄었다. 2013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뒤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실제로 한 국내 대기업 법무팀 임원은 “AI가 신입뿐 아니라 6, 7년 차 직원의 몫도 해내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한국은 암울한 시트리니 보고서조차 성장하는 국가로 지목한 ‘AI 특수’ 국가다. 인간이 AI로 대체될수록, 데이터센터를 돌릴 반도체는 더욱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일자리 없는 성장이 가져올 지독한 양극화가 장밋빛 미래일 리는 없다.
AI발 일자리 파괴는 기존 대책도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고용지표가 따로 놀기 시작해 과거의 처방이 안 통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인사들도 통화 정책만으로는 AI가 초래할 구조적 실업에 대처할 수 없다며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대응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AI가 ‘쓸모’를 두고 경쟁하는 새로운 경제는 교육부터 복지, 조세와 산업정책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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