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김현수 동아일보 해외특파원 김현수 기자 공유하기

뉴욕의 모든 것을 글에 담습니다.

최신 순
美 SEC “투자수익 과장하는 AI워싱 위험”… 월街 실태 전수조사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 대형 금융사의 인공지능(AI) 사용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고객에게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AI를 어떻게 규제할지 고심해 온 SEC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규제 틀을 짜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SEC는 최근 JP모건체이스 등 주요 투자 자문사에 AI 활용 현황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고객 포트폴리오 관리에 활용되는 AI 알고리즘 모델, AI 관련 마케팅 서류, 데이터에 대한 제3자 제공, 컴플라이언스(준법) 교육 사항 등이 SEC의 요청 내역에 모두 포함됐다. AI 활용 금융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사가 금융 분야 AI 규제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 유망주 추천, 포트폴리오 설계… AI에 빠진 월가 SEC의 AI 실태조사는 최근 미 월가까지 번진 AI 도입 경쟁을 반영하고 있다. AI 적용 분야도 다양하다. 투자 포트폴리오 작성뿐 아니라 내부 배임 방지 기능도 개발 중이다. JP모건은 고객들에게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줄 수 있는 ‘인덱스GPT’를 올해 5월 발 빠르게 상표등록을 마쳤다. 모건스탠리는 오픈AI와 손잡고 자사 재무상담사들을 위한 맞춤형 ‘챗GPT’ 형태의 챗봇을 도입했다. 최근 각종 위법 의혹에 휘말렸던 도이체방크는 생성AI를 통해 트레이더의 ‘통화 톤’에서 위법행위 징후를 감지하는 AI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한 트레이더가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는 말을 했을 때 이것이 단순한 깜짝파티 계획에 대한 것인지, 모종의 음모가 담긴 것인지 AI가 알아채도록 훈련시키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사내 AI그룹을 꾸렸다. 2위 뱅가드 또한 고객들의 은퇴 포트폴리오 생성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모티머 버클리 뱅가드 최고경영자(CEO)는 5월 “생성 AI 도입으로 상당수 ‘인지 작업’이 일상적인 수준임을 발견했다”며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작업이 갑자기 모두 자동화되는 혁명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국내 AI스타트업 크래프트 테크놀로지스와 LG AI 연구원 또한 공동으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AI 기반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해 화제를 모았다. 이 펀드는 AI가 매달 고른 유망한 대형주 종목 100개에 투자한다. 국내 금융권도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AI 챗봇뿐 아니라 올 3월 AI 음성뱅킹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맞춤형 예적금 상품 상담 등에 AI 기술을 적용한 ‘AI 금융상담 서비스’ 구축에 나섰다.● SEC “AI발 금융위기 우려” 경고 SEC는 계속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올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규제 당국의 신속한 개입이 없으면 향후 10년 내 AI로 인한 금융위기 촉발이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특정 AI 모델 및 알고리즘에 기댄 투자 결정이 금융위기를 부를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최근 ‘2023 동아뉴센테니얼포럼’에서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 퓨처리스트 인스티튜트 의장도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결과물은 단조롭고 왜곡될 수 있다”며 “독점적 정보나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AI 관련 과대 광고에 대한 우려 역시 상당하다. 겐슬러 위원장은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과 마찬가지로 ‘AI 워싱’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AI가 모든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줄 것처럼 기대하게 만드는 마케팅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SEC가 규제 일변도의 행보를 걷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겐슬러 위원장 또한 “(AI가 야기할) 잠재적 위험이 월가 기업이 아닌 기술 기업이 만든 모델에 기반하고 있어 금융규제 당국엔 어려운 도전”이라고 토로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2023-12-12 03:00
‘제미나이’ 시연영상, 실시간 아닌 편집본… “다급한 구글, 무리수”사람이 오리를 그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를 알아차리고 “물에서 수영하고 부리가 있으니 오리”라고 정답을 맞힌다. 오리를 파랗게 칠하니 “오리에겐 드문 색”이라고 말한다. 구글이 6일(현지 시간) 야심 차게 공개한 멀티모달(multi-modal) AI ‘제미나이(Gemini)’ 시연 영상 속 한 장면이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가 현실 세계를 관찰하고 추론해 말로 답하는 모습에 당시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6분 22초짜리 영상은 제미나이의 인식 및 반응 전 과정을 편집 없이 한 번의 컷으로 녹화한 게 아니었다. 제미나이가 실제 본 것은 사람이 실시간 그리며 실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물이 아니라 다 그린 것을 찍은 사진이었고, 음성으로 사람과 대화하지도 않았다. 제미나이에게 보여준 것도, 제미나이의 답변도 극적 효과를 위해 오려 붙이고, 음성을 입힌 편집 영상이었다. 구글은 올 초 오픈AI ‘챗GPT’ 대항마라며 챗봇 ‘바드’를 내놓고 시연할 때도 오답이 그대로 공개돼 주가가 떨어지는 망신을 당했다. 세계 최대 AI 개발 조직을 둔 구글이 챗GPT에 뒤처진 AI 기술 경쟁 국면을 급하게 전환하려다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챗GPT에 앞선 모습 보이려다…” 미 블룸버그통신이 8일 제미나이 시연 영상이 편집된 영상이라고 폭로하자 구글은 “실시간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미리 준비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기반으로 제작됐다”고 이를 인정했다. 이어 “시연 영상은 제미나이 멀티모달 기능으로 (사용자와 AI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이날 칼럼에서 “느릿느릿한 검색 대기업이 챗GPT에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챗GPT 이후 판이 커진 AI 시장에서 구글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리자 다급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오픈AI 사태를 겪으며 AI 투자를 늘리려는 기업들이 단일 AI 모델에 의존할 때의 리스크를 인식하고 대안을 찾으려 하자 구글이 성급하게 제미나이를 공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이 오픈AI GPT 4의 성능을 능가한다고 밝힌 ‘제미나이 울트라’는 내년 출시 예정이라 미공개 상태다. 엘리 콜린스 구글 딥마인드 제품 담당 부사장은 블룸버그에서 “오리 관련 시연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는 기능”이라고 말했다. 챗GPT 3.5 버전과 비슷한 ‘제미나이 프로’는 바드에 적용해 출시했지만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기자가 영어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최신 정보를 알려달라’고 적자 “갈등 국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구글에 검색해 보라”고만 답했다.● MS-오픈AI는 독점 논란 마음이 급한 것은 구글만이 아니다. 시장조사기업 IDC는 올해 세계 기업이 생성형 AI 도입에 160억 달러(약 21조 원)를 들였고, 2027년에는 투자액이 1430억 달러(약 188조 원)까지 뛸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전망이 유력하자 구글뿐 아니라 다른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오픈AI 내홍 직후 AI 개발 관련 발표를 쏟아내고 있다. 메타는 6일 IBM 및 세계 50여 개 AI 연구기관과의 동맹을 발표했고, ‘6개월 AI 연구 중단’을 주장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7일 AI 챗봇 ‘그록’ 배포를 시작했다. 오픈AI와 MS는 AI 안전성 문제와 기술 독점을 우려하는 미국과 영국 규제당국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MS가 130억 달러(약 17조 원)를 투자해 오픈AI 산하 영리법인 지분 49%를 인수한 것을 단순한 투자가 아닌 합병으로 볼 것인지 조사 검토에 나선 것이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예비 자료 수집에 착수했고,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조사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11 03:00
美 11월 고용 19.9만↑…“연준 조기 인하 기대감↓”11월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이 19만9000명 증가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미국 노동 시장이 시장 전망보다는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나타나 시장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발표 직후 뉴욕증시 선물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8일(현지시간) 미 노동부는 의료 및 공공 일자리 증가와 파업 노동조합의 직장 복귀에 따라 11월 고용이 19만9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블랙프라이데이 등 미국 대형 소비 성수기에도 소매업 고용은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고용 증가분 19만9000명은 시장 전망치(18~19만 여 명)를 소폭 상회했고 10월의 15만 명보다 높아진 수치다. 또 실업률이 3.7%로 시장 전망치(3.9%)보다 낮아졌다. 주요 인플레이션 지표인 시간당 평균 급여는 전월 대비 0.4%로 역시 시장 전망치(0.3%)를 소폭 상회했다. 미 고용보고서는 인플레이션과 미 경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 연준의 정책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지표로 꼽힌다. 시장은 이번 고용보고서가 시장에 퍼져 있는 연준 조기 금리 인하론을 뒷받침할지를 주시했다. 시장의 기대만큼 둔화세가 가속화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고용보고서 발표 직후 뉴욕증시 선물은 소폭 하락세를 보였다. 미 월가 주요 코멘테이터로 꼽히는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미국 경제에는 좋은 뉴스다. 여전히 고용, 임금이 강하다는 증거”라며 “시장은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감을 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니스 드버셔 22V 리서치 창업자는 “이번 고용보고서는 전반적으로 강하지만 시장에 재앙 수준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금리가 (예상보다) 훨씬 내려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8 23:06
대화형 챗봇은 옛말…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는 AI시대 성큼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챗봇 인공지능(AI) 경쟁이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AI로 옮겨가고 있다. 오픈AI가 올 10월 보고 듣는 기능을 통합한 챗GPT(GPT-4)를 선보인 데 이어 구글도 6일(현지 시간) 멀티모달 AI ‘제미나이(Gemini)’를 공개했다. 구글은 제미나이 최상위 버전이 GPT-4를 능가했다고 밝혔다.● 보고 듣는 멀티모달 AI 시대 챗GPT가 월 20달러 유료 고객에게 멀티모달 기능을 선보이자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기자가 ‘최근 90일 동안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 종가’가 담긴 엑셀 파일을 주고 차트로 만들라고 하자 선그래프를 그려주며 설명도 덧붙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 문제 사진을 찍어 ‘답이 맞는지 봐 달라’고 하면 문제 풀이와 함께 오답 여부를 알려줬다. 한국어로 말한 뒤 영어로 바꿔 달라고 하면 바로 통역도 해줬다. 구글은 여기서 더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바둑AI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날 미 정보기술(IT) 매체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컴퓨터 과학자이자 신경과학자로서 사람이 모든 감각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적용한 새로운 세대 AI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며 “제미나이는 새로운 유형의 AI”라고 말했다. 구글이 이날 공개한 사전 녹화 영상에서 제미나이는 수학 시험지를 보여주면 오답을 분석하고, 물리 시험도 그림을 보고 척척 풀었다. GPT-4를 노리고 만든 최상위 버전 제미나이 울트라는 대규모 다중작업 언어 이해(MMLU) 테스트 정답률이 약 90% 수준이었다. GPT-4는 86.4%를 기록했다. MMLU는 수학 물리학 역사 법률 의학 윤리 등 57개 주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AI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테스트다. 구글 측은 “인간 전문가 점수인 89.8%를 넘은 최초의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제미나이 울트라는 내년 출시 예정이어서 아직 일반 대중이 검증할 수는 없다. 챗GPT 무료 버전인 GPT-3.5의 대항마 제미나이 프로는 이날 구글 챗봇 ‘바드’에 바로 적용됐다.● 후각, 촉각도? “다음은 로봇 AI” AI 경쟁이 멀티모달 AI로 진화하는 것은 이미지와 비디오, 오디오 등 반응 데이터 종류가 확장될수록 AI를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멀티모달 AI를 활용해 불량품을 잡아낼 수도 있다. 텍스트나 이미지만으로 판단하고 응답하는 AI에 비해 활용도가 높아져 통·번역, 교육, 서비스 등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구글이 기업 고객을 오픈AI나 마이크로소프트(MS)에 빼앗기지 않도록 예정보다 더 빨리 제미나이를 선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맥도널드는 구글과 광범위한 AI 협력에 나선다고 밝혔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 세일즈포스는 GPT-4를 바탕으로 기업 맞춤형 AI를 적용하고 있다. MS는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 같은 자사 MS 오피스 소프트웨어에 적용한 AI ‘코파일럿’을 출시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여기에 로봇 공학까지 결합해 사람에 더 가까워진 AI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사비스 CEO는 이날 “진정한 멀티모달이 되려면 촉각 피드백을 포함해야 한다”면서 보고 듣는 것 외에 만져서 받아들이는 정보도 파악해 추론 데이터로 활용하는 로봇 AI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8 03:00
美 내년 기업대출 만기, 올해의 4배 “제2 SVB사태 우려”‘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이제 JP모건체이스의 일부입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콜럼버스서클에 위치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유리문에는 이 같은 종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985년 설립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이 2126억3900만 달러(약 276조 원)로 미국 내 14위의 중견 은행이었다. 하지만 올해 5월 파산하며 주인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로 바뀌었다.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자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가 확대되며 이 은행에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올 3월 고금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실 경영 등이 원인이 돼 다른 은행들까지 연쇄 파산을 일으킨 SVB 사태가 전 세계 은행에서 조만간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한계기업들의 줄도산이 ‘트리거’(방아쇠)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식분석회사 울프리서치는 미국 금융회사를 제외한 기업의 부채 중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9030억 달러(약 1172조 원)로, 올해 2040억 달러(약 264조 원)보다 342.6% 급증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 또는 연체 상태에 있는 은행 대출금 규모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누적된 악성 부채와 고금리, 경기 침체 국면이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권이 부실화하면 예금 인출 문제 등 전체 경제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VB 사태로 위기감이 커진 미국 중소형 은행들도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은행 간 인수합병(M&A)이 올 하반기(7∼12월) 들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일본 역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할 경우 소형 은행들이 미국 SVB를 파산시킨 ‘고금리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대손충당금을 대폭 늘리는 등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3분기(7∼9월) 말 기준 대손충당금은 7조868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9.0% 늘어났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2023-12-07 03:00
美 점포 1500개 소매체인, 獨 100년 의류기업… 글로벌 줄파산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6번가에 있는 가정용품 소매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는 간판만 유지한 채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이른바 ‘가정용품의 천국’으로 불리며 2017년 매장이 미 전역에 1500개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업체는 올 4월 파산 신청을 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잡지 못한 것 등이 원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약 500개의 BB&B 매장이 문을 닫았고, 1만4000명이 실직했다”면서 “지금까지의 파산이 개별 산업의 문제가 원인이었다면 이제는 금융 비용 상승으로 인해 더 많은 기업이 문제에 노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계기업들의 줄도산은 이미 글로벌 경제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고금리가 장기화되며 빚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은 물론이고 소상공인들의 파산이 내년엔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美 파산 2배로 증가… 대기업도 무너진다이미 세계 곳곳의 파산 통계는 위기 경보를 울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서비스 기업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미국 기업 516곳이 파산 절차를 밟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파산 기업 수(263곳)와 비교하면 거의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BB&B 외에도 미국의 3대 약국 체인인 ‘라이트 에이드(Rite Aid)’가 10월 파산 신청을 발표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사비타 수브라마니안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 전략담당 수석은 “대기업보다 ‘제로금리’ 시대에 태어난 중소기업은 변동금리 등의 타격을 면하기 쉽지 않아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도 동일한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탯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4∼6월) 파산을 신청한 기업 규모는 2015년 전체를 100으로 봤을 때 105.7이었다. 분기별로 파산한 기업의 규모 지수가 100을 넘긴 것은 2015년 1분기(1∼3월·105.5) 이후 처음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유명 의류기업 ‘피크앤드클로펜부르크’는 올해 3월 파산을 신청했고, 자산 가치가 38조 원대에 이르는 오스트리아의 거대 부동산 기업 시그나그룹의 지주사 시그나도 지난달 말 파산을 선언했다. 조만간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기업들도 상당수다. 미국 포브스는 지난달 비디오 기반 커머스 체인인 큐레이트리테일과 미국 내 최대 반려견 용품업체 펫코 등 11개 소매업체가 몇 달 안에 파산할 것이라고 실명을 나열하며 보도했다. 포브스는 “부채가 많은 소매업체는 일부 매장을 폐쇄하거나 영업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소상공인들 “직원 줄여 간신히 버텨”고물가, 고금리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면서 소상공인들은 고육지책으로 버티고 있다. 캐나다의 식당 소상공인 연합 ‘레스토랑스 캐나다’에 따르면 2023년 5월까지 현지 식당의 파산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가량 늘어났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만난 잼 판매업자 윌슨 톨로 씨(40)는 “과일, 설탕 가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두 배가량 올라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면서 “직원을 한 명 줄여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 91만206개 중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한계기업 비율은 42.3%에 달했다.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올해 3분기(7∼9월)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非)금융기업 부채비율은 126.1%로 세계 3위에 해당할 만큼 높아 고금리에 더 취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금리 장기화로 기업들이 어려워져 단기적으로 고용이 줄고 소득이 감소해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밴쿠버=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2023-12-07 03:00
“챗GPT 따라잡아야 산다”… 메타-IBM 등 50여곳 ‘AI 동맹’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와 IBM이 세계 테크 기업, 대학 등 50여 곳과 인공지능(AI)을 함께 개발하는 연합체 ‘AI 얼라이언스’를 출범했다. AI 기술 양대 산맥인 오픈AI 및 마이크로소프트(MS) 진영과 구글에 대한 도전장으로, AI 개발 경쟁에서 3파전이 본격화한 셈이다. 5일(현지 시간) AI 얼라이언스 측은 “개방적이고 안전하며 책임감 있는 AI 발전을 위해 글로벌 커뮤니티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메타와 IBM 주도로 미국 일본 유럽의 반도체(인텔, AMD) 및 정보기술(IT·델, 소니, 소프트뱅크) 기업, 국가기관(미 항공우주국·NASA), 대학(뉴욕대 버클리대 도쿄대) 등 50여 곳이 참여하는 개방형 AI 개발 시스템 연합체다. 이들은 개발 원천 코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폐쇄형 오픈AI-MS 진영에 맞서 기술 공유로 AI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폐쇄형 개발 옹호론자들은 ‘위험한 기술을 공개하면 범죄 조직이 악용할 수 있다’며 개방형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메타-MS-구글 3파전 본격화AI 얼라이언스에는 인텔과 AMD 같은 반도체 기업, NASA,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소프트뱅크가 일본어 바탕 LLM 구축을 위해 설립한 SB인튜이션 등도 창립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I용 반도체 분야에서 엔비디아를 뒤쫓는 AMD는 자사 칩을 활용한 하드웨어 구축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오일머니를 퍼부어 설립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AI대, 싱가포르 기술과학청(A*STAR), 뭄바이 인도공대(IIT) 등도 AI 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 AI 4대 석학으로 꼽히는 얀 르쾽 메타 수석 AI 과학자 겸 뉴욕대 교수 또한 ‘AI 얼라이언스’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지 얼마 안 됐을 당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의 관심은 AI보다 메타버스에 가 있었다. 르쾽 교수는 올해 초 그런 저커버그를 만나 오픈AI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따라잡지 못하면 “인스타그램이 없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당시 르쾽 교수는 저커버그에게 오픈AI를 따라잡으려면 기술 원천 코드를 공개하는 ‘오픈 소스’ 방식, 즉 개방형 개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세계의 많은 연구자와 개발자가 메타 AI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고 훨씬 빠른 속도로 기술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저커버그는 “당신이 옳다”고 동조했고 결국 ‘AI 얼라이언스’가 탄생했다. ● AI 기술 ‘개방 vs 폐쇄’ 논란 여전AI 얼라이언스는 개방형 모델이 범죄조직에 AI 개발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AI 개발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개방형 문제는 오픈AI 샘 올트먼 CEO 해임 사태로 불거진 윤리 논쟁과 함께 AI 업계의 핵심 현안이다. AI의 파멸적 힘을 우려하는 규제론자뿐만 아니라 개발론자인 오픈AI, MS, 구글 모두 폐쇄형 개발을 지지한다. 반면 르쾽 교수, 마크 앤드리슨 넷스케이프 창업자 같은 개발론자들은 “기업 한두 곳의 AI 독점이 더 위험하다. 소외되는 언어, 국가, 계층이 생긴다”고 경고한다. 오픈AI 사태 이후 많은 기업이 특정 AI 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우려해 개방형 방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IDC에 따르면 올해 세계 기업은 생성형 AI 솔루션에 약 160억 달러(약 21조 원)를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7 03:00
‘블프’ 대목앞 폐업 나선 佛 라데팡스… 中쇼핑타운도 고금리 한파‘재고 정리합니다. 50% 할인에 2개 이상 품목 구입 시 10% 추가 할인.’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라데팡스 쇼핑몰 레카트르탕. 쇼핑몰 중앙에 있는 남성복 매장 ‘카포랄’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적힌 대형 광고가 붙었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불과 나흘 앞두고 있었지만 점심 시간 ‘틈새 쇼핑’을 하는 직장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장을 홀로 지키고 있던 사장 발랭탕 장티 씨는 “10년간 이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제는 정말 버틸 수가 없어서 한 달 뒤 가게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연말 대목에 폐업을 결정한 것이다. 이 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보다 고객이 30%가량 줄었다. 쇼핑몰 곳곳에 재고 정리와 세일 간판이 걸려 있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점포 약 100곳 가운데 중앙 2곳을 포함해 총 12곳이 공실로 남아 있다. 여기저기 폐업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라데팡스는 파리 서부 외곽의 버려진 장소였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50m 이상의 초고층 빌딩이 10여 채 들어서면서 새로운 상업지구로 탈바꿈했다. 현대식 건물과 쇼핑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도시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주변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라데팡스 지역의 공실률은 지난해 15.7%까지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파리 시민과 관광객 등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도시의 상권이 완전히 무너졌고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얼어붙은 소비…문 닫는 쇼핑몰 이 같은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랜드마크 상업용 건물인 ‘왕징 소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타워1의 1층 매장은 3곳 중 1곳꼴로 문을 닫았다. 올 3분기(7∼9월) 베이징 지역의 평균 공실률은 19.5%에 달한다. 왕징 소호의 편의점에 근무하는 점원은 “코로나19 때보다 오가는 사람이 늘었지만 지갑을 여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때 기업가치 470억 달러에 달했던 공유경제의 아이콘 ‘위워크’의 몰락은 그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건물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에 밀린 월세, 임대차 계약 관련 소송 비용 등을 포함한 위워크의 부채는 187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에서만 47개 지점을 운영했던 위워크는 35개 지점의 임차 계약 종료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뉴욕 현지의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갖은 소송전과 공실 등으로 위워크를 임대인으로 두고 있는 건물들의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고금리와 높은 공실률로 인해 주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데 찬물을 부은 격”이라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에 의한 자산시장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을 비롯해 글로벌 랜드마크 빌딩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부동산·유통 기업 시그나그룹도 지난달 29일 파산 신청을 했다. 앞선 올해 8월에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아시아 지역의 부동산 업계가 출렁였다.● “부동산 위기, 유동성 잔치 청구서” 각국 소비시장이나 부동산 업체들의 위기는 저금리 시기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킨 공격적인 차입 경영이 부메랑이 됐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도 이런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은 수익이 감소하면서 지점 폐쇄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추가 공실이 발생하고,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근무가 정착되고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소비 패턴이 일상화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부동산 가격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되는 원인 중 하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금리 시기에 유동성 잔치를 벌인 데 대한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며 “고금리·고물가의 영향으로 최소한 내년 후반기까지 소비 침체와 함께 상업용 부동산의 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2023-12-06 03:00
구겐하임 미술관도 감원…팬데믹-인플레 후유증 앓는 美 미술관미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인플레이션 후유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장료를 인상하고, 휴관 일을 늘린데 이어 감원도 이어지고 있다. 관람객 수는 여전히 저조한데 인건비 등 비용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400여 명 임직원 중 10여 명을 감원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술관 측은 “다른 미술관들처럼 비용 상승으로 예산 압박을 받고 있다”며 “입장료를 인상하고 가능한 모든 비용을 절감해 적자를 줄이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직원 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감원 규모는 전체의 2.5% 수준으로 부국장급과 커뮤니케이션팀 일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구겐하임미술관의 감원은 최근 미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겪고 있는 재정난을 반영한다고 NYT는 평했다. 코로나19 이후 관람객 수 회복이 더딘 가운데 인건비와 운용비용 상승에 따른 타격이 큰 탓이다.구겐하임 미술관은 앞서 올 8월 입장료를 성인 기준 25달러(3만3000원)에서 30달러(3만9000원)로 인상한 바 있다.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도 입장료를 30달러로 올렸고, 올 10월 뉴욕 현대미술관(모마)도 입장료를 올려 ‘30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모마가 입장료를 올린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모마는 “입장료 인상이 미술관의 재정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도 지난달 “2019년 대비 관람객수가 35% 줄었다”며 직원 20여 명 감원을 단행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미술관은 최근 전체 임직원의 8%에 해당하는 20여명을 감원한데 이어 비용 절감을 위해 이달부터 폐장일을 하루 더 늘리기로 했다. 일주일에 이틀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댈러스 미술관 측은 “감원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우리는 비용 상승, 정부 지원금 만료, 팬데믹 이전에 비해 줄어든 관광객 수 등 ‘포스트 팬데믹’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5 14:57
“가계 전시상황” 전세계 고금리 파동“한 달에 한 번 하던 외식도 못 할 정도로 삶이 팍팍해졌습니다.” 캐나다 서부 밴쿠버 인근에 거주하는 제니퍼 홀 씨(46)는 금리 인상으로 달라진 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5년 전 변동금리로 60만 캐나다달러(약 5억7961만 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계약 당시 연 2.7%였던 금리는 올해 6월 7%대로 치솟았다.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도 어려워진 그는 만기가 끝나기 전인 8월 연 5.8% 3년 고정금리 상품으로 갈아탔다. 홀 씨는 “5년 전보다 월 상환액이 950캐나다달러(약 92만 원)나 불어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이후 2년째 이어지는 고금리·고물가 현상으로 글로벌 경제가 충격을 받으면서 각국 국민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 만난 10여 명의 사람은 “(금리 상승 등 최근 경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살림살이가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한다”고 털어놨다. 주요국들은 코로나 시기에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이 물가를 끌어올리자 앞다퉈 긴축을 시작하며 ‘유동성 잔치’를 끝냈다. 각국 중앙은행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지만 생활 물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고금리 기조가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이어지며 전 세계 경제 주체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이렇게 이자 부담이 높아지면서 각국에선 내수 불황과 소비 위축이 발생하고 있고 상업용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도 연쇄 충격이 우려되고 있다. 빚 부담이 커진 한계기업의 줄도산 위기가 은행권 부실로 전이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년 하반기부터 주요국이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이전 같은 초저금리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며 “고금리로 장기 침체에 빠진다면 모두가 고통받기 때문에 신산업 육성 등 성장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월급 40% 대출상환… 전세계 영끌족, 고금리 고통 시작에 불과”〈1〉 허리띠 졸라매는 각국 중산층캐나다 주담대 이율 3년새 5배로… 英선 月임대료 한번에 66만원 올라저금리때 대출 늘렸던 젊은이들… “월세-점심값 전부 다 뛰어 부담 급증” “남편이 매달 벌어오는 돈의 40%를 주택담보대출 갚는 데만 쓰고 있으니 전시(戰時) 상황이 따로 없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어요.”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 보아디야델몬테의 연립주택에 사는 주부 아나 힐 씨(55)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저금리 시기에 대출 규모를 늘려 총액 30만 유로(약 4억2558만 원)를 변동금리 조건으로 상환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자 늘어난 부채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000유로(약 142만 원)를 넘지 않았던 월 상환액은 1460유로(약 207만 원)까지 불어났다. 스페인의 금융소비자 보호 단체 ADICAE엔 최근 힐 씨와 같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족’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변동금리 주담대를 고정금리로 변경하거나 원금을 조기 상환하는 등 상환 부담을 줄이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변동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12개월 유리보(Euribor·유럽 은행 간 금리)가 지난해 7월 초 0.961%에서 올해 12월 초 3.902%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변동금리 주담대 비중은 올해 10월 기준 약 75%로 한국(58.4%)보다 높다. ● 고금리 직격탄 맞은 글로벌 ‘영끌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가 급증한 캐나다도 고금리 충격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캐나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9%로 세계 3위였다. 한국(100.2%·4위)보다 높다. 샤나 리 캐나다왕립은행(RBC) 모기지 스페셜리스트는 “고금리의 충격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담대 이자가 1.1%까지 하락했던 2020년, 2021년 ‘영끌’한 고객이 많다”며 “그때 변동금리로 계약한 고객들은 현재 6%에 가까운 이자를 내고 있는데, 이자가 크게 늘어 원금은 갚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모기지주택공사(CMHC)에 따르면 85만 캐나다달러(약 8억2111만 원) 이상을 빌린 대규모 주담대 보유자의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0.08%에서 올해 2분기(4∼6월) 0.13%로 급등했다. 미국의 중산층도 고물가와 임차료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미 뉴욕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프레드 맥널티 씨(30)는 올봄 맨해튼 북단 ‘워싱턴하이츠’ 지역으로 이사했다. 2021년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월 1660달러(약 216만 원)였던 ‘할렘’ 지역 스튜디오(방이 없는 원룸) 월세가 2년 뒤 1970달러(약 257만 원)로 20% 가까이 뛰었다. 맥널티 씨는 기자와 만나 “현재 지역에선 방 2개 아파트를 월 2550달러(약 333만 원)에 구했다”며 “그나마 나는 경제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외식 습관도 바뀌었다. 팬데믹 이전엔 맨해튼 미드타운(시내 중심지)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으면 1인당 7∼15달러(약 9000∼2만 원)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5∼20달러(약 2만∼3만 원) 수준에 팁이 20%가량 붙어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긴축 여파로 월세 부담도 상승 금리 갱신 주기가 비교적 짧은 영국에선 연말까지 고정금리 주담대 150만 건의 만기가 돌아올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들어 영국의 주담대 금리가 급등해 7월에는 2년 만기 고정금리 평균이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인 6.66%까지 치솟기도 했다. 영국의 싱크탱크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금리 인상으로 주담대 상환액이 늘어나 연말까지 120만 가구의 저축이 바닥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리 상승의 영향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올해 7월 영국 주택 임대료는 통계 발표 이래 가장 큰 폭(5.3%)으로 올랐다. 영국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 박경민 씨(26)는 “주변에는 월세로 400파운드(약 66만 원)가 한 번에 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고강도 긴축의 충격으로 세대 갈등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 시기에 집을 산 중장년층과 달리 젊은층은 고금리에 집을 사기도, 가족을 꾸리기도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맥널티 씨는 “베이비부머들은 저금리에 집을 사고, 부부 중 한 명은 집에서 가족을 돌볼 수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맞벌이가 아니면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마드리드·런던=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밴쿠버=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5 03:00
나스닥 1달러 미만 ‘동전주’ 급증… 2년새 2개→497개뉴욕증시에서 1달러 미만에 거래되는 이른바 ‘동전주(penny stock)’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과 2021년 시장 유동성이 넘치던 시기 상장한 스타트업 주가가 급락한 탓이다. 3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1년 2월 주가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진 미 주식은 4개 종목뿐이었지만 2022년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자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기준 592개로 최근 3년간 최고치를 찍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만 보면 2021년 7월 동전주 수는 2개에서 지난달 15일에 497개로 3년래 가장 높았다. 동전주 수가 급증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초저금리로 스타트업 상장 열풍이 불었다가 거품이 꺼진 탓으로 분석된다. 당시 엄격한 상장 심사를 피하기 위해 기업인수목적회사인 스팩(SPAC)을 통한 우회상장이 유행했다.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도 2019년 상장 실패 후 2021년 스팩 우회상장을 통해 상장했다가 동전주로 전락한 상태다. 2021년 8월 스팩 상장한 자율주행차 센서 기업 에이아이(AEye)는 상장 이후 주가가 98% 하락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빅테크 실적 상승으로 나스닥 지수가 올 들어 37% 급등한 것과 상반된 현상이다. 나스닥에는 주가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진 기업의 상장을 취소하고 퇴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취소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이의 신청 과정 등으로 최소 1년 이상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 WSJ는 “애플 같은 우량주가 거래되는 나스닥에서 위험한 동전주가 함께 거래되는 것은 투자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5 03:00
[특파원칼럼/김현수]오픈AI 사태 핵심은 돈과 인재지난달 챗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AI에서 벌어진 내홍은 공상과학소설과 기업 암투 드라마를 합쳐 놓은 영화 같았다. 마블 영화 속 ‘인피니티 스톤’에 필적할 만한 미래 인공지능(AI) 힘을 거머쥐고자 하는 천재들의 신념 논쟁, 그 사이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는 기업인, 이들을 지원하거나 비판하는 학자, 시민단체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결과 AI의 막강한 동력이 무엇인지 확인됐다. 돈과 인재다. AI 개발에는 고성능 컴퓨팅 능력이 필요하다.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AI 칩 하나가 5000만 원이 넘는다. ‘인류를 위한 AI 개발’을 앞세운 비영리단체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을 수밖에 없던 이유다. AI의 파멸적 힘을 막는 데 초점을 둔 ‘효과적 이타주의자(EA)’ 모임 계열의 오픈AI 이사회는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이 사명을 저버렸다며 해임했지만 17조 원을 투자한 MS 눈치는 살폈다. 미 잡지 뉴요커에 따르면 오픈AI 이사회는 MS 지지를 얻을 것으로 착각했다. 황당해하던 MS는 사태 해결 카드로 돈과 인재를 꺼냈다. 보도에 따르면 MS의 플랜 A는 이사회 설득, 플랜 B는 투자 중단 압박, 플랜 C는 올트먼과 임직원의 MS 영입이었다. 오픈AI 이사회는 플랜 B와 C, 특히 임직원 90%의 이직 협박에 굴복했고 올트먼은 돌아왔다. AI 인재 부족으로 핵심 연구원 없이는 개발도, 안전 연구(alignment·AI를 인간 의도에 맞춰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경쟁사들은 오픈AI 내홍을 틈타 인재 포섭 전쟁을 벌였다. MS가 복잡한 경영 구조로 통제가 어려운 오픈AI에 17조 원을 베팅한 이유도 인재 확보였다. MS 내부에선 AI 개발에 잇달아 실패하자 ‘구글에는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만연했다고 한다. 반면 오픈AI 연구원들은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했고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는 것이다. 오픈AI처럼 EA 철학을 바탕으로 2010년 출범한 딥마인드도 돈과 인재 문제로 구글과 손을 잡았다. 바둑 AI 알파고로 유명한 딥마인드 창업자들은 2014년 구글에 딥마인드를 매각할 때 군사 목적 사용 불가, 윤리위원회 개최 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하지만 윤리위는 2015년 딱 한 번 열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구글 외부 계열사로 있던 딥마인드는 올해 구글 내부 AI 팀 브레인과 합쳐졌다. ‘딥러닝의 아버지’이자 AI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초기 AI 인재 전쟁 상징으로 꼽힌다. 2012년 힌턴 교수와 제자 2명 영입을 두고 실제 경매가 열렸다. 구글, MS, 중국 바이두가 경쟁한 끝에 구글이 4400만 달러(약 574억 원)로 낙찰에 성공했다. ‘오픈AI 쿠데타’ 중심 일리야 수츠키버 오픈AI 수석과학자도 이때 경매에 함께 올랐다. 올트먼은 천재 과학자 수츠키버를 붙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AI 안전성 문제는 인류가 해결해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물밑에선 투자와 인재 유치가 한창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서방 각국이 AI 규제에 합의하고 있지만 자국 AI 경쟁력을 뒤로 미룰 리는 없다. 오래전부터 AI 인재 싹쓸이에 나선 중국,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이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더더욱 그럴 수는 없다. 인류에게는 ‘비극적이게도’ 오픈AI 사태 핵심은 윤리 전쟁이 아니다. 이미 시작돼 멈출 수 없는 개발 전쟁에서 기술과 자원은 소수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도 투자와 인재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4 23:48
“인류 파멸 불씨냐, 번영의 선물이냐”… AI ‘두머’ vs ‘부머’ 대논쟁[인사이드&인사이트]《지난달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갑작스레 해임됐다가 5일 만에 복귀한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오픈AI가 올트먼을 해임하려 한 결정적 이유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지난해 11월 30일 챗GPT(GPT 3.5버전) 공개 이후 오픈AI가 전 세계적 열풍의 한가운데 서면서 내부 갈등이 심각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AI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냐, 안전 규제를 우선시할 것이냐를 두고 이른바 ‘두머(doomer·파멸론자)’ 대 ‘부머(boomer·개발론자)’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불행한 결말’이라는 뜻의 ‘둠(doom)’에서 따온 ‘두머’는 AI의 해악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와 안전성 마련을 주장한다. 반면 ‘호황’을 뜻하는 ‘붐(boom)’에서 비롯된 낙관론자 ‘부머’는 AI를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고 본다. 불은 삶의 터전을 태워 버릴 위험이 있지만 결국 인간이 불을 통제해 문명을 구축했듯 AI도 인류 번영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종이클립의 역설…인류 문명 파괴” “GPT-4(오픈AI의 최신 AI 모델)를 능가하는 AI 개발을 6개월간 중단해야 한다.” 세계의 시선이 챗GPT에 쏠려 있던 올 3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저명한 기술자 그룹은 이런 내용의 서한을 발표했다. AI 연구단체 ‘미래생명연구소’가 주도한 서명 운동이었다. 머스크 CEO뿐 아니라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 AI 석학 스튜어트 러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 등이 참여한 이 서한은 세계에 AI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기술업계 내부에서는 “AI 두머가 오픈AI와 최대 투자자 마이크로소프트(MS)에 보내는 경고”라고 표현했다. 2015년 발족한 미래생명연구소는 머스크와 러셀 교수가 고문으로 있는 연구단체다. AI의 위험성을 경고한 파멸론자들의 산실이자 실리콘밸리 커뮤니티인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EA)’와도 연관이 깊다. EA는 효율적 기부와 연구로 인류의 위험을 막겠다는 유사 철학 운동이다. 20년 전부터 AI 파멸론자들은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핵심 인물은 비영리단체 기계지능연구소(MIRI) 설립자 엘리에저 유드코스키다. 그는 고교를 중퇴했지만 인간을 초월한 AI에 대한 공포를 강조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며 유명해졌다. 2005년 글로벌 온라인 결제 기업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의 자금 지원으로 MIRI를 설립했다. 2010년 유드코스키는 틸에게 과학자 셰인 레그, 데미스 허사비스를 소개했다. 이들은 AI연구 선두기업 ‘딥마인드’(2014년 구글에 인수) 설립자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21년 기사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안전하게 AI를 개발할 적임자라고 여겼다”고 평했다. 2014년 AI 두머와 합리주의자, EA가 한데 뭉칠만 한 계기가 있었다. 유드코스키와 교류해 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닉 보스트럼의 저서 ‘초지능’이 출간된 것이다. 보스트럼은 이 책에서 AI 두머의 상징이 된 ‘종이클립 이론’을 제시했다. 클립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임무를 가진 AI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생산 설비 스위치를 끌 수 있는 인간을 제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 AI가 예상과 달리 인류에게 치명적 해악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종이클립은 두머들의 상징이 됐다. 오픈AI 쿠데타의 핵심 인물인 일리야 수츠키버 오픈AI 수석과학자는 AI가 인간의 의도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인간 지능 수준의 ‘일반인공지능(AGI)’의 안전성을 다루는 슈퍼얼라인먼트(Super-Alignment·초정렬)팀의 수장이었다. 머스크, 고 스티븐 호킹도 두머에 동조했다. 머스크는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한 2014년 한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AI와 함께 악마를 소환하고 있다”고 했다. 머스크는 페이팔을 함께 운영한 틸, Y컴비네이터를 이끌던 올트먼과 함께 2015년 구글 딥마인드 대항마를 설립했다. 그게 바로 ‘인류를 위한 AI 개발’을 기치로 내건 비영리단체 오픈AI의 출발이었다. 이후 오픈AI의 분화가 이뤄졌다. 부사장이던 다리오 아모데이는 오픈AI가 지나치게 빨리 상업화되고 있다며 2021년 EA 계열 지지를 바탕으로 AI 기업 앤스로픽을 세웠다. 이들은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의 합류로 더욱 힘을 얻었다. “AI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말하겠다”며 5월 구글에서 퇴사한 힌턴 교수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유드코스키가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을 한다”고 했다. ● “AI는 인류의 선물, ‘불’이다” 챗GPT 돌풍이 불기 직전인 2022년 가을 무렵, 오픈AI 사무실로 종이클립 무더기 소포가 도착했다. 클립은 오픈AI 로고 모양으로 제작돼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경쟁사 앤스로픽 연구원이 장난 삼아 보냈다. 오픈AI가 파멸의 AI를 이끌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오픈AI를 세운 머스크와 올트먼, 힌턴 교수의 제자 수츠키버 등은 초반에만 해도 이들에게 ‘악의 축’이던 빅테크 구글 딥마인드에 대항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2018년 머스크는 오픈AI와 결별했다. 머스크가 오픈AI 조직을 장악하려 하자 올트먼이 막아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오픈AI는 MS로부터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는 데 성공했다. 오픈AI 투자를 이끈 인물은 케빈 스콧 MS 수석 부사장이다. 스콧과 올트먼, 미라 무라티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코드가 맞았다. 미 시사주간지 더뉴요커에 따르면 스콧과 무라티는 지독한 가난을 ‘기술’을 통해 이겨낸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AI는 사람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도구일 뿐이고, 인류에 번영과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부머’ 쪽이었다. 오픈AI 연구원들은 점점 올트먼의 빼어난 투자 유치 능력하에 AI 부머에 가까워졌다. 아모데이 당시 부사장은 앤스로픽 설립 전인 2019년 우연히 연구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GPT의 코딩 능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반면 스콧과 무라티는 흥분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AI의 능력을 엿봤기 때문이다. AI 부머들은 두머 진영에 대해 “킬러 로봇이란 망상에 빠진 비과학적 컬트 집단”이라고 비난한다. ‘AI 4대 천황’으로 꼽히는 메타 수석과학자 얀 르쾽 뉴욕대 교수와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AI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며 기술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고 있다. 6월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유명 벤처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AI는 세상을 구할 것이다’라는 글에서 “더 큰 위험은 중국만 AI를 개발하고 서방 진영은 규제에 매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AI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규제를 통해 ‘AI 카르텔’을 유지하고 후발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막으려는 ‘기회주의자’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 올트먼의 두 얼굴올트먼은 두머일까 부머일까. 이번 해임 사태를 계기로 부머임이 뚜렷해졌지만 올트먼은 그간 두머들도 인정하는 뛰어난 사업가였다. 그는 MS와 손잡고 챗GPT 상업화에 누구보다 열을 올렸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돌며 AI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3월 EA 지지자인 틸 페이팔 창업자도 WSJ에 “올트먼은 ‘잘못된 이상주의’와 ‘근시적 야망’ 사이에서 그 누구보다 잘 헤쳐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머들은 올트먼의 행동이 앞뒤가 다르다고 느꼈고, 결국 해임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AI 업계 고위 임원은 “올트먼은 누구보다도 경쟁적으로 AI 산업을 이끌어 저작권을 비롯해 가장 많은 소송을 당했다”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각국 규제 당국에 ‘우리를 규제해 달라’고 외쳤다”고 평했다. 이 때문에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규제 논의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3 23:39
한미일 안보실장, 8~9일 서울서 대북공조 논의한국 미국 일본과 호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공동 대북제재에 나섰다. 4개국 사전 공조로 동시 대북제재를 가한 것은 처음이다. 중-러 반대로 새로운 안보리 제재가 막히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이 공동행동을 펼친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수익 창출 활동과 관련한 북한인 8명과 기관 1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대상은 북 정찰총국 산하 해킹조직 김수키 및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 청송연합의 테헤란 주재원 강경일 리성일, 중국 베이징 주재원 강평국 등 8명이다. 올 6월 김수키를 제재 대상에 올린 정부는 리철주 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부국장 등 5명과 탄도미사일 연구개발에 관여한 6명을 제재한다고 1일 밝혔다. 일본 정부도 이날 김수키를 비롯한 기관 4곳, 개인 5명을 독자 제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군 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21일 북한의 불법 발사는 여러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해 세계 안보를 훼손했다”며 “특히 대한민국 일본 호주가 처음으로 각각 대북 제재 대상을 지정해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달 27일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상임이사국 중국 러시아 반대로 신규 대북제재는 물론이고 의장성명도 채택하지 못했다. 한미일은 8∼9일 서울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참석하는 안보실장 회의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항공절’을 맞아 인민군 공군사령부와 제1공군사단비행연대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공군사령부 작전지휘소로 추정되는 곳에서 담배를 들고 장비들을 살펴봤다. 벽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한반도와 일본, 동남아 일부가 포함된 태평양 일대 사진이 보였다. 통상 군사정찰위성 촬영 사진과는 각도가 달라 최근 발사한 ‘만리경 1호’ 촬영 사진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날 딸 김주애가 올 8월 27일 해군 시설 참관 이후 96일 만에 동행한 모습도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김 위원장 부녀는 비슷한 가죽코트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시위 비행(곡예 비행)을 참관했다. 이날 저녁 경축 연회장에 참석한 김주애의 식탁 주변 3개 식탁은 거의 여성 간부로 채워졌다. “김 위원장이 ‘여성도 차기 군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2023-12-02 01:40
韓美日호주, 北 정찰위성 발사에 첫 공동 제재한국 미국 일본과 호주가 유엔 안전보장위원회 결의를 위반한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공동 대북제재에 나섰다. 4개국 사전 공조로 동시 대북제재를 가한 것은 처음이다. 중-러 반대로 새로운 안보리 제재가 막히자 아시아태평양지역 4개국이 공동행동을 펼친 것이다.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수익 창출 활동과 관련한 북한인 8명과 기관 1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대상은 북 정찰총국 산하 해킹조직 김수키 및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 청송연합의 테헤란 주재원 강경일 리성일, 중국 베이징 주재원 강평국 등 8명이다.올 6월 김수키를 제재 대상에 올린 정부는 리철주 북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부국장 등 5명과 탄도미사일 연구개발에 관여한 6명을 제재한다고 1일 밝혔다. 일본 정부도 이날 김수키를 비롯한 기관 4곳, 개인 5명을 독자 제재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군 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21일 북한의 불법 발사는 여러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해 세계 안보를 훼손했다”며 “특히 대한민국 일본 호주가 처음으로 각각 대북 제재 대상을 지정해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달 27일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상임이사국 중국 러시아 반대로 신규 대북제재는 물론 의장성명도 채택하지 못했다.한미일은 8∼9일 서울에서 조태용 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참석하는 안보실장 회의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항공절’을 맞아 인민군 공군사령부와 제1공군사단비행연대를 방문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공군사령부 작전지휘소로 추정되는 곳에서 담배를 들고 장비들을 살펴봤다. 벽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한반도와 일본, 동남아 일부가 포함된 태평양 일대 사진이 보였다. 통상 군사정찰위성 촬영 사진과는 각도가 달라 최근 발사한 ‘만리경 1호’ 촬영 사진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이날 딸 김주애가 올 8월 27일 해군 시설 참관 이후 96일 만에 동행한 모습도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김 위원장 모녀는 비슷한 가죽코트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시위 비행(곡예 비행)을 참관했다. 이날 저녁 경축 연회장에 참석한 김주애의 식탁 주변 3개 식탁은 거의 여성 간부로 채워졌다. “김 위원장이 ‘여성도 차기 군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2023-12-01 17:25
美 인플레 둔화에 ‘금리 인하’ 기대감…다우 22개월래 최고점미국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내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 핵심기업들로 구성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22개월 만에 최고점을 찍으며 이같은 기대감을 반영했다. 이날 미 상무부는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수인 10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년대비 3.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물가가 오르던 2021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정책목표 2%대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년대비 3.5% 올라 시장 전망치에 부합했다. 근원 물가는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부문을 뺀 물가 지수다. 근원 PCE물가지수 상승률은 7월 4.3%, 8월 3.8%에서 9월 3.7%, 10월 3.5%로 꾸준히 내림세를 보여왔다. 연준의 바람대로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뚜렷해짐에 따라 12월 12, 1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이 유력하다. 금리 선물 거래를 통해 연준의 정책경로를 반영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PCE 물가지수 발표 이후 투자자들은 12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약 96%, 내년 5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가능성을 약 80%로 점치고 있다. 한달 전만해도 5월 인하 가능성은 40% 안팎에 그쳤었다. 뱅크오브어메리카, 도이치뱅크 등 월가 금융사들은 6월 금리 인하를 전망하고 있다. 12월 FOMC 회의 이후 공개될 점도표에서 인하 가능성이 시사될 지 관심이 쏠린다.금리 인하 기대감에 다우지수는 이날 전장대비 1.47% 올라 연고점을 경신했다. 11월 한달로 계산하면 8.8% 급등했다. 10월은 연준 고금리 장기화 우려와 국채금리 급등 공포가 시장을 휩쓸었지만 11월 들어 미 주요기업 실적 서프라이즈와 인플레이션 둔화 시그널이 이어진 덕이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11월 한 달 동안 각각 8.9%, 10.7% 상승률을 보이는 등 시장은 10월 미 국채쇼크에서 벗어나 낙관론에 힘을 실었다. 한편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소비는 10월 들어 급격히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소비 지출 증가율은 전월 대비 0.2%로 9월(0.7%)에 비해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 영향이 지속되고, 정부 지원금 효과가 떨어지면서 미 소비자들의 소비 능력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언제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만약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연준이 더 편안하게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1 15:17
美 위워크 이어 유럽 ‘빌딩재벌’ 파산신청… 상업부동산 빨간불미국 뉴욕 크라이슬러빌딩을 비롯해 글로벌 랜드마크 빌딩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부동산·유통 기업 시그나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자산 규모 38조 원이 넘는 기업이 고금리와 상업부동산 찬 바람에 만기가 돌아온 대출을 갚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미 공유오피스 기업 위워크 파산에 이어 유럽 거물 부동산 재벌도 무너지자 각국 규제 당국과 시장은 상업부동산과 금융기관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동산 시장의 가장 드라마틱한 추락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 25년 만의 고금리에 무너진 부동산 거물 시그나그룹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며 ‘자율 관리 형태’로 채무 조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대주주 르네 벵코가 “영국 왕실 수준”이라며 자랑했던 세계 랜드마크급 부동산도 고금리 여파를 견디지 못했다. JP모건은 시그나그룹 주요 자회사 부채가 1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70억 유로(약 38조 원)를 보유한 시그나의 창업자 벵코는 세계 부동산 시장의 유명 인사였다. 2019년 미국 부동산투자기업 RFR과 공동으로 1억5000만 달러에 크라이슬러빌딩(부지는 제외)을 매입해 주목받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셀프리지 백화점, 베를린 간판 카데베 백화점 등 유럽 번화가 백화점도 순식간에 사들였다. 시그나그룹은 이번 파산의 원인과 관련해 “유통부문 투자 수익률이 예상보다 낮은 여파가 컸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유로화 25년 역사상 가장 높은 금리와 시그나 자산이 몰린 독일 부동산 폭락이 파산에 이르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창업자 벵코는 고금리 중에도 부채를 늘려 자산을 취득했다. 태국 부동산 재벌 센트럴그룹과 손잡고 스위스 명품 백화점 체인 글로버스를 인수하고 64층짜리 독일 함부르크 타워 등 대규모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가 저물자 자산가치는 하락했고, 대출 만기 연장도 어려워졌다. 벵코는 파산 직전까지 단기자금 6억 달러를 구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와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등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불발됐다. ● 세계 상업 부동산 가격 하락 자극할 수도 각국 규제 당국과 시장은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기자들에게 “(시그나에) 투자한 모든 사람들, 특히 은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오스트리아 최대 은행 라이파젠이 시그나에 빌려준 대출 등 손실액이 7억5500만 유로(약 1조700억 원)에 달하며, 스위스 율리우스 베어 은행은 6억 스위스프랑(약 8900억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집계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독일 경제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시그나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추진했던 64층 빌딩 건설 사업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독일 경제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이 불안해지면 전체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시그나그룹이 일부라도 부동산 매각에 나서면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해 유럽 은행들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상업부동산은 저금리 시대에 투자 열풍이 불었지만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한파를 맞았다. 미국도 공유오피스 위워크 파산과 공실률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 상업용 부동산 한파에 국내 금융권의 부동산 해외투자 손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 텍사스주 댈러스의 오피스 4개 동을 투자액보다 약 23% 낮은 금액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2018년 출시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피스빌딩 공모 펀드 손실률은 80%를 넘어섰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투자한 해외 자산들도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신규 투자는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2023-12-01 03:00
연준선호 美 근원 PCE물가 3.5%↑…내년 금리 인하 기대감↑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선호하는 물가지수인 10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전년대비 3.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연준의 내년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에 힘을 실었다. 11월 30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10월 PCE 물가지수가 전년대비 3.0%올라 9월(3.4%)에 비해 내려갔다고 밝혔다. 이는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한 2021년 3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로도 변동이 없는 0%로 9월(0.4%)에 비해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연준이 정책목표 기준으로 삼는 근원 PCE 물가지수도 전년대비 3.5% 올라 시장 전망치에 부합했다. 근원 물가지수는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주거비 서비스 내구재 등의 물가를 의미한다. 근원 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로도 0.2% 올라 시장 예상과 일치했다. 10월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여전히 연준의 정책목표인 2%대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둔화하는 추세를 지속했다. 지난 7월 4.3%, 8월 3.8%에서 9월 3.7%, 10월 3.5%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연준의 바람대로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뚜렷해짐에 따라 12월 12, 1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이 유력하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금리 선물 거래를 통해 연준의 정책경로를 추적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PCE 물가지수 발표 직후 투자자들은 12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약 96%, 내년 5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가능성을 70% 이상으로 점치고 있다. 뱅크오브어메리카, 도이치뱅크 등 월가 금융사들은 6월에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12월 FOMC 회의 이후 공개될 점도표에서 인하 가능성이 시사될지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소비는 10월 들어 급격히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소비 지출 증가율은 전월 대비 0.2%로 9월(0.7%)에 비해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 영향이 지속되고, 정부 지원금 효과가 떨어지면서 미 소비자들의 소비 능력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브렛 라이언 도이치뱅크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은 소비자들의 ‘소비능력’에 달려있다”면서도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경제 성장이 둔화돼야 한다. 이는 소비 감소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날 뉴욕증시는 혼조세로 출발했다. 연준의 내년 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인 PCE 물가지수에 힘입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개장과 함께 약 0.5% 상승해 올해 최고치 수준에 접근했다. 반면 소비세 둔화 우려 등의 영향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2-01 00:00
아마존, 기업용 AI 챗봇 선보여… 구글-MS와 ‘인공지능 3파전’미국 전자상거래 및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아마존이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에 도전장을 냈다. 아마존 클라우드 사업부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연례 클라우드 컴퓨팅 콘퍼런스인 ‘AWS 리인벤트(re:Invent) 2023’을 열고 기업고객을 위한 AI 챗봇 ‘큐(Q)’를 선보였다고 28일(현지 시간) 밝혔다. Q는 AI에 무엇이든 질문하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아마존이 대화형 AI 챗봇을 선보인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이후 오픈AI의 챗GPT 돌풍이 분 지 1년 만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기업형 챗봇AI’에 집중해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치열해지는 AI 경쟁 “Q는 수백만 직장인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애덤 셀립스키 AWS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이 정보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범용) AI 사용을 금지했지만 Q는 보안을 강화한 기업형 AI”라고 강조했다. MS의 ‘코파일럿’, 구글의 ‘듀엣AI’, 오픈AI의 ‘챗GPT 엔터프라이즈’와 직접 경쟁하는 모델이다. 기업들이 보안 문제로 회사 데이터를 범용 AI에 보내기를 꺼린다는 점에 착안해 아마존은 자사 클라우드에 보관돼 있는 회사 정보를 활용해 Q가 맞춤형 AI 비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직원이 요청하면 Q가 회사 내부 정보를 활용해 분석,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작성을 돕게 된다. 셀립스키 CEO는 “자동으로 소스 코드를 변경하는 등 개발자의 업무 부담도 덜어줄 것”이라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 능력”이라고 밝혔다. 구글이나 MS에 비해 AI 관련 소식이 뜸하던 아마존은 9월 오픈AI의 경쟁사 앤트로픽에 40억 달러(약 5조1500억 원)를 투자했다고 밝히는 등 새로운 발표를 예고해 왔다. MS와 구글의 기업용 챗봇 가격은 인당 월 30달러인 것에 비해 Q는 20달러로 책정해 가격 경쟁력에도 중점을 뒀다.● AI발 허위정보는 여전 기업 업무에 AI 활용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허위정보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심지어 기술 개발 콘퍼런스의 발표자 명단에 AI가 생성한 ‘가짜 연사’가 올라 참석자들이 반발해 행사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테크 전문매체 더버지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다음 달 7, 8일 예정된 기술 개발 콘퍼런스 ‘데브터니티(DevTernity)’ 연사 명단에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직원이라며 ‘애나 보이코’라는 여성이 올랐다. AI로 생성된 허위 직함을 단 가상 인물이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여성 참석자 수가 적은 것을 AI로 감추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논란에 실제 유일한 여성 발표자인 AWS 고위 임원 크리스틴 하워드를 비롯해 MS의 스콧 핸슬먼, 구글의 켈시 하이타워 등 주요 인사들이 모두 콘퍼런스 불참을 선언했다. 핸슬먼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보통 콘퍼런스에 초대받으면 곧바로 ‘누가 참석하나요’라고 묻기 마련이다. 나도 가짜 연사에 속았다”고 밝혔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2023-11-30 03:00
기사통계
3,875건 최근 30일 간39건
주요 취재분야레이어보기
  • 미국/북미
    28%
  • 국제일반
    17%
  • 국제경제
    17%
  • 칼럼
    11%
  • 경제일반
    8%
  • 산업
    6%
  • 금융
    6%
  • 국제교류
    3%
  • 남북한 관계
    3%
  • 인사일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