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대신 워킹 페어런츠[광화문에서/김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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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앞이 캄캄했다. 아들 유치원이 지난주 온라인 수업 시범 운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 손이 많이 간다고 들어서 부랴부랴 근무를 조정하느라 진땀을 뺐다. 스케줄 조정이란 허들을 뛰어넘으니 자책감과 울화가 뒤섞인 인내심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여섯 살짜리가 컴퓨터 앞에서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대기만 해도 귀여웠다. 하지만 가만 보니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낯을 가리고 있었다. 바쁜 엄마가 놀이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런가 싶은 자책감이 들었다. 또 수업보다 장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종이에 정답을 쓴 뒤 화면을 피해 입 모양으로 “이거야, 이거”라고 가르쳐 주다가 결국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실시로 이번 주도 온라인 수업이 이어진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님께 화상회의 사용법을 알려드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들지만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하는, 일하는 부모의 고충은 진짜 만만치 않다. 상반기에 휴가를 다 써버린 이들은 다시 치솟는 신규 확진자 수에 망연자실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업은 경영진이 직접 워킹맘 응원에 나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초 워킹맘 임직원들과 만나 “일과 육아 병행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도 최근 온라인 임직원 간담회에서 ‘워킹맘을 배려하는 기업문화’를 강조했다. 요즘엔 월급만 제대로 나와도 ‘신의 직장’이라는데 워킹맘을 끌어안으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고맙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없진 않다. ‘워킹맘’ 간담회가 아니라 ‘워킹 페어런츠’ 간담회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전제가 기저에 깔린 것 같아서다. 사실 부부가 양육을 나눠 맡는 가정이 요새 늘고 있지만 육아휴직, 육아기 단축근무제도 같은 복지제도 이용률은 아직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17.8%에 그쳤다. 워킹맘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워킹 대디들의 양육 능력 발휘 기회를 막을 수도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이직 준비하느냐고 비아냥대는 시각이 여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될수록 엄마 혼자 육아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 교육 등 외부 기관과 나누던 영역을 가정에서 온전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코로나로 인한 ‘육아재난’을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근무 형태가 도울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이제 재택근무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빠들의 돌봄휴가 신청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3월 시행 후 첫 한 달 동안 남성 신청 비중은 31.0%였다가 5개월 누적으로는 38.0%로 늘었다.

‘개인 사정’을 바라보는 조직의 관점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몸이 아픈 직원도 있고, 노부모를 모셔야 하는 중장년층 직원도 있다. 각자의 사정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누구든 마음 편히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워킹맘#맞벌이부부#육아재난#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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