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5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면서 시작된 청와대 인사 개편은 흐지부지됐다. ‘최근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도 정작 다주택 처분 논란의 장본인이었던 노영민은 건재했다. 실패한 부동산 대책의 주무 장관과 청와대 정책 라인도 흔들리지 않았다. 부동산 대책 실패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성찰을 기대한 국민들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14일 차관급 인사 브리핑을 하면서 첫머리에 “내정된 9명 모두가 1주택자”라고 강조했다. 12일 청와대 수석 인사를 발표할 때도 “최근 우리가 한 인사 대상자가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라고 했다. 끝내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문책 인사 등 책임지는 모습은 없었다. 밥을 원했는데 빵을 주면서 소통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작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건너뛰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선택적 메시지’다. 청와대 인사가 민심과 겉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권은 3년 넘게 23번째 대책을 쏟아놓고도 집값이 요동치는 현 상황을 정책 실패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 참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고문이다. 여기엔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정치적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을 거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집권 4년 차 레임덕(lame duck), 권력누수 현상 말이다. 이 둑이 뚫리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이듬해 대통령 선거까지 장담할 수 없고, 그 흐름을 막기 위해선 ‘부동산 정책 실패는 없다’는 깃발을 고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이러니 정책 기조의 전면 쇄신보다는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치는 부동산 정치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초조함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여당 지도부 경선에 나선 한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주인을 무는 개’ 운운하는 막말까지 했다. 윤석열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가 현 정권의 레임덕을 촉발할 수 있는 도발이라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 눈치도 보지 말라’던 대통령의 발언이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
4·15총선으로 출범한 176석 거여(巨與)는 군사정부 때도 보지 못했던 입법 폭주를 밀어붙였다. 상임위 법안 심사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거추장스럽다고 걷어차 버린 오기 정치의 완결판이었다. 당내에선 청와대와 지도부 지시만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맹목적 충성감만 번득였다.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원 팀’으로 뭉치자고만 한다. 국민 눈높이를 외면한 채 오로지 강경 지지층만 쳐다보고 가겠다는 자기 폐쇄의 정치다. ‘민주화 적통’을 자처하는 세력의 반민주적 행태다.
거센 부동산 역풍으로 박근혜 탄핵 이후 3년 넘게 견고하던 여당 우세 지지율이 야당 우세로 역전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반감도 있겠지만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는 여권의 이 같은 일방통행이 민심 이반에 불을 더 지폈을 것이다.
여권의 독선과 오기를 경고하는 ‘빨간불’은 여러 차례 켜졌다. 그런데도 강경 지지층에만 집착하는 여권의 역주행이 계속되자 민심의 ‘스윙 보터’인 중도층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동치는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면 여권의 국정 운영은 탄력을 받을 수 없다. 레임덕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다.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면 그것이 레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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