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누구와 경쟁하나[오늘과 내일/고기정]

고기정 경제부장 입력 2020-08-03 03:00수정 2020-08-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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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49조 대형 핀테크 1개보다 시총 1조 핀테크 49개가 필요하다
고기정 경제부장
금융과 정보기술(IT)을 결합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자고 한 건 다양한 핀테크 기업들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벤처 붐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IT 생태계를 구축했듯 핀테크 산업은 신생 기업들의 경연장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핀테크의 문이 열리자 거대 포털 네이버가 시장을 접수하고 있다.

지난주 네이버는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을 통해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금융대출 상품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의 네이버페이는 이미 신용카드처럼 후불 결제가 가능해졌다. 네이버 통장도 출시했다. 조만간 자동차보험까지 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네이버는 법적으로는 은행도, 카드사도, 보험사도 아니다. 네이버가 언론사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뉴스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검색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디지털 독점기업이다. 스스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는 관문을 늘려가는 식으로 성장해 왔다. 2분기 영업이익이 80% 늘어난 것도 온라인 쇼핑 덕분이었다. 네이버의 금융시장 장악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소매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는 KB국민은행의 전국 오프라인 지점 방문자는 하루 20만 명이지만 모바일뱅킹 이용자는 250만 명이나 된다.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접속자의 97%는 통장 조회와 이체 업무를 본다. 네이버가 수신 업무를 못 한다고는 하지만 조회와 이체만으로도 기존 은행의 역할을 대신하기엔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금융업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비 올 때 우산 뺏어가는 식으로 영업해 온 대형은행들이 앞으로도 지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호막을 둘러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 시장에 새로 참여하는 도전적인 혁신가들에 의해 관성과 관행이 깨질 때 산업이 발전하고 소비자 후생이 커진다. 하지만 그 혁신가가 또 다른 대형 독점기업이어선 안 된다. 시가총액 49조 원짜리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총 1조 원짜리 핀테크 기업 49개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게 핀테크 육성 논의가 갖고 있던 사회적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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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금융이력이 부족해 자금 융통이 어려운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대출업에 진출하겠다고 설명했지만, 그러려면 그냥 은행 라이선스를 받는 게 맞다. 은행이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건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주고, 국가가 예금자 보호 업무를 대신 맡아주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의 정당성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핀테크 업체에는 감독 규제를 상당 부분 면제하는 건 진입장벽을 낮춰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빅테크(대형 핀테크 업체)까지 이 예외의 수혜 대상일 필요는 없다.

지난주 미국 의회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최고경영자들을 한꺼번에 청문회장에 세웠다. 독점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선 이들 IT 업체들을 쪼개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들 기업은 상대적으로 검색이나 온라인 상거래 등 본연의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네이버가 세계 시장에서 구글이나 아마존과 경쟁하며 디지털 영역을 넓혀간다면 국내 시장의 독점은 부차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삼성이나 현대차의 독점을 따질 때 시장의 범위를 국내로 볼 것이냐, 전 세계로 볼 것이냐가 중요한 전제인 것과 같은 이치다. 네이버는 수출기업도 아니고 해외에서 부가가치를 많이 생산하는 곳도 아니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네이버#경쟁#핀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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