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영은이가 ‘美 대통령 장학생’ 된 비결[오늘과 내일/박용]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20-05-30 03:00수정 2020-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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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대신
배려와 기회가 0.004% 인재 키워
박용 뉴욕 특파원
시각장애를 가진 미국의 한인 청소년 이영은 양(19·뉴저지주 노던밸리고 졸업)이 백악관이 뽑은 ‘대통령 장학생’에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늘 그렇듯 극소수는 “똑똑하게 태어나서 그런 것 아니냐”고 ‘삐딱선’을 탔다. 영주권자인 이 양은 “나도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영은이는 2001년 경남 진주에서 선천성 희귀 망막질환인 ‘레베르 선천성 흑내장’을 갖고 태어났다. 부모는 백일쯤 됐을 때 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큰 병원에서 아이가 커서 앞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부모는 치료와 교육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

영은이는 시야가 터널처럼 좁고 사물이 흐릿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혼자서는 뛸 수도,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다. 그래도 아버지 손을 붙잡고 달리기를 할 때만큼은 갑갑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영은이는 2009년 미 버지니아주 초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달리기클럽에 가입했다. 낯선 사람과 함께 달리는 게 겁이 났지만 나중에 친구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자신감을 얻은 영은이는 학생회 활동에 도전했다. 학교생활을 사진 등으로 기록해 교지에 싣는 ‘히스토리안’에 지원했다. 친구들은 10명의 지원자 중 적극적인 성격의 영은이를 편견 없이 뽑아줬다. 학교는 영은이에게 밀려 탈락한 친구 1명을 짝으로 맺어줬다. 이 친구는 눈이 불편한 영은이에게 사진을 찍을 곳을 알려주고 찍은 사진에 대한 느낌도 들려줬다. 둘이 함께 하니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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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이는 점자나 오디오북으로 공부를 한다. 그래도 2등으로 고교를 졸업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영은이는 학교가 채용한 ‘점자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공부에 필요한 자료나 그래프를 e메일로 보내면 이 전문가가 점자로 만들어서 영은이에게 보내줬다. 뉴저지주는 영은이 같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점자 자판이 달려 있는 ‘점자 컴퓨터’도 지원해 줬다.

영은이는 2017년 눈이 돼줄 평생 친구도 만났다. 한 시각장애인 지원 비영리단체의 도움으로 안내견 ‘메기’를 분양받았다. 안내견 한 마리를 훈련시키는 데 약 5만 달러(약 6200만 원)의 큰돈이 든다. 이 단체는 미국 민간인들의 기부를 받아 시각장애 학생들을 돕고 있다.

백악관은 장애를 딛고 학업과 비교과 활동에서 두각을 보인 영은이를 이민자의 자녀라는 편견 없이 360만 명의 고교 졸업생 중 0.004%(161명)에게 주어지는 ‘대통령 장학생’으로 뽑았다.

영은이는 올해 9월 프린스턴대에 진학한다. 졸업을 하고 워싱턴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정치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정치 너드(Nerd·괴짜)’라고 부르는 이 양은 “모든 사람은 신체, 정신, 언어 등에서 어려움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와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은이는 자신의 의지와 가족의 도움으로 일어섰다. 그런 영은이를 힘차게 달릴 수 있게 밀어준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고 기회를 주는 미국의 평범한 이웃과 학교, 시민단체, 정부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0.004% 인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회적 자본을 먹고 자란다. 우리 사회에 장애를 딛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더 많은 영은이가 나오면 좋겠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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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극복#이영은#미국 대통령 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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