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총성[임용한의 전쟁史]〈10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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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제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아내 조피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대공 부부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복잡한 국내 사정과 암살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첩보가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사라예보에 오기 전 방문한 지역에서 주민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부는 경호원 없이 재래시장을 산책했고, 그 분위기가 사라예보에서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첫 번째 시도는 암살범이 던진 폭탄이 대공 부부의 차를 넘어가는 바람에 혹은 운전수가 폭탄을 발견하고 가속페달을 밟은 덕분에 뒤차에서 터졌다. 부상자가 생겼다. 대공은 충격을 받았고 겁도 났던 모양이지만, 의연함으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일정을 바꿔 병원에 가서 부상자를 위문하겠다고 했다. 조피도 대공의 용기에 동행하겠다고 우겼다.

이날의 경호는 역사에 기록될 만큼 엉망이었다. 모두가 음모 가담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코미디에 가까운 사고 연발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공의 차는 마지막 암살범, 가장 왜소하고 이미 몸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그러나 최고의 명사수에 진정한 킬러였던 가브릴로 프린치프 앞에서 멈췄다. 그는 단 2발을 발사했는데 한 발은 대공의 목 정맥을, 한 발은 조피의 위장 동맥을 끊었다.

암살범들은 생각도 못 했던 결과였지만, 이 사건으로 1000만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런데 정작 세르비아 등은 1차대전에서는 소외되었다. 이 암살의 배경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 이 지역의 복잡한 정세는 근 100년간 방치되다가 20세기 끝 무렵 최악의 내전으로 꼽히는 유고, 코소보 내전으로 폭발했다. 인간은 정말 현명한 걸까?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고등교육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전해주는 것일까? 사라예보의 총성은 아니라고 한다. 사회 전체가 누구도 손쓸 수 없는 격류에 휩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몸부림칠 뿐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사라예보#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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