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며든 독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탄탄한 힘[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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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파리도서전에 오셨나 봐요?”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가 물었다. 프랑스 파리도서전을 취재하기 위해 출장 갔을 때였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40대로 보이는 남성 기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파리도서전이 열리는 베르사유 전시장 근처에서 탔고, 가는 곳은 출판사잖아요.”

그랬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를 인터뷰하기 위해 알뱅 미셸 출판사로 가는 길이었다. 기사의 눈썰미에 감탄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도로 양쪽을 따라 파리도서전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고 빌딩 전광판에도 도서전을 홍보하는 영상이 수시로 떴다.

“파리도서전이 열리기 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진행자들이 오프닝, 클로징 멘트에서 도서전 얘기를 계속해요. 아주 확실하게 각인된답니다. 혹시 작가를 만나러 가세요?”

노통브를 만난다고 하자 기사의 목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아,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발상이 기발하고 재미있잖아요. 앞으로 더 흥미로운 작품을 쓸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노통브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가 있느냐고 물었다. 머릿속으로 작가들을 떠올리는 사이, 택시는 출판사에 도착했다.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택시에서 기사와 문화에 대해 대화한 건 이때가 유일하다.

파리도서전을 즐기는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담당 부처인 문화부의 장관뿐 아니라 상당수 장관들이 각자 시간을 내 도서전에 와 책을 살폈다. 유명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개인적으로 도서전을 찾았다. 유치원, 초중고교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오고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은 주제별 토론회에 참가해 메모를 하거나 때로 질문도 했다. ‘악(惡)이란 무엇인가’같이 무거운 내용을 다루는 자리에도 의자가 꽉 찼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프랑스의 독서 문화를 보며 매력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가요 애니메이션 등의 기본은 글이다. 독서를 통해 탄탄하게 다진 기본기는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는 바탕이 된다.

올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콘텐츠 산업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며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하는 ‘콘텐츠 산업 3대 혁신 전략’을 발표한 후 출판계에서는 허탈해하는 목소리가 크다. 콘텐츠의 기본이 되는 ‘글’을 다루는 출판이 빠졌기 때문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출판을 포함해 순수예술 분야 예산을 가장 큰 폭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의 정책 하나로 가파르게 하락하는 독서율을 높이긴 어렵다. 그럼에도 글의 중요성을 항상 인식하며 정책을 짜고 운용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머리와 가슴에 강렬한 울림을 주고,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 책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또 다른 창작물이 태어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문화 강국의 독서율이 높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독서 문화#파리#도서전#콘텐츠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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