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WTO 위기, 패권국발 무역질서 흔들기 대비할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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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세계 자유무역의 수호자였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자(多者) 간 무역질서를 정착시킨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이어받아 1995년 출범한 WTO가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당장 WTO에서 가장 중요한 분쟁해결기구가 운영 정지될 상황에 놓였다. 국가 간 분쟁 해결 기능은 GATT에는 없던 것으로, 국제무역을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550여 건의 분쟁 대부분이 해결됐고 패배자들도 WTO의 심판을 따랐다. 그러나 최근 미국 등 강대국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국가의 철강 자동차 등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거나 무역장벽을 높이고, 이를 제재하는 WTO를 오히려 공격함으로써 분쟁 조정 역할이 마비될 지경이다.

게다가 WTO에서 무역분쟁을 최종 심사하는 상소기구는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3명만 남았고 올해 말 1명으로 줄어든다. 미국이 “WTO의 분쟁 해결이 편파적”이라면서 임기 만료된 위원들의 자리에 새 위원들을 선임하는 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소기구가 마비되면 장기간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WTO가 무력해지고 약육강식의 무역 질서가 지배하게 되면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WTO 보고서도 무역분쟁이 심해지면 2022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34% 줄어들어, ―4.12%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다음으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지난해 말과 지난달 말 연달아 ‘WTO를 개혁하자’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미국도 아직 WTO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간 디지털화 등 경제 상황 변화를 반영해 WTO의 내용을 바꿀 필요도 있다. 한국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는 강대국들의 동상이몽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WTO 개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보호무역주의#무역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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