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추월 차선의 미국, 서행 차선의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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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만든 규제브레이크…변속하고 가속페달 밟아야

박용 뉴욕특파원
박용 뉴욕특파원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차량호출 회사 리프트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첫날 시가총액은 현대자동차 규모로 뛰어올랐다.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했지만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이르면 이달 말 미국 자동차 3사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미 최대 차량호출 회사 우버도 뉴욕 증시에 데뷔할 수 있다. 미 차량호출 1, 2위 회사가 모두 상장하는 셈이다.

대어(大漁)들이 줄지어 증시에 등판하면서 월가에선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1999년의 기록을 20년 만에 깨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 시장이 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한국은 ‘카풀 논란’에 발목이 잡혀 차량호출 회사가 시장에 발조차 내밀기 힘든데, 미국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추월 차선을 질주하는 사이 한국이 서행 차선에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는 건 우버 등장 이후 10년간 모두 걱정만 하고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가 택시 규제를 쥐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었던 건 정부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버와 리프트처럼 정보기술(IT)로 차량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요금을 결정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장 메커니즘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조물주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과거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우버가 창업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택시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곳이었고, 뉴욕에서 우버를 환영한 이들은 정부의 교통정책이 실패했던 도심 외곽의 교통 사각지대 주민들이라는 것을 보면 진실의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술 전환의 시대에 정부와 공무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기술을 통해 규제를 진화시키는 일이다. 기술 변화에 따라 재산적 피해를 볼 수 있는 개인택시 기사들, 일자리의 변화가 불가피한 택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미리 살피고 지원책을 준비하는 일도 필요하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0년간 이런 준비를 꼼꼼히 해 왔다면 오늘날 신구 시장의 갈등은 최소화됐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택시 공급 대수, 요금 등 낡은 규제는 틀어쥐고, 기존 시장의 구성원과 신생 기술기업에 사회적 대타협을 기대하는 건 허망한 일이다. 그러니 “사회적 대타협기구에 어려운 일을 다 넘기면 공무원이 월급 받고 할 일이 무엇이냐”는 따끔한 질책이 나온다.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공무원들이 수십 년간 만들어 놓은 정책과 규제의 틀에서 하던 일만 열심히 하면 신생 기업은 시속 100km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서행해야 한다. 정부가 공을 들여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는 판교밸리엔 애당초 실리콘밸리의 두뇌인 스탠퍼드대와 같은 대학이 들어설 수 없었다. 그건 대학 신설을 막는 수도권 규제 때문이었다.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가 물류 시장을 혁신하고 소매업의 판도를 바꿀 때 한국의 쿠팡은 화물자동차운수법 규제와 씨름하느라 한참 달려야 할 때 서행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혁신의 가속페달을 밟았거나 밟고 있지만 소리만 요란하고 기대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추월 차선으로 쌩쌩 달려 나간다. 누구도 한국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추격의 고통은 고스란히 바통을 넘겨받을 후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 떼고, 변속하고, 가속페달 밟는 상식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박용 뉴욕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 차량호출 회사#리프트#나스닥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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