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안철수 벤처 정치의 리스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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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안철수 의원을 얼마 전 어느 간담회 형식의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시도지사 후보 영입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가시적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 면전에서 실례를 무릅쓰고 정치인으로서는 아직도 애송이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김영삼의 3당 합당이나 김대중의 DJP연합 같은 신의 한 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었다. 그가 무슨 귀에 쏙 들어오는 답을 하지는 않았다.

2일 일요일 아침 전격적으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신당 창당을 발표할 때의 안 의원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안철수였다. 원칙대로만 하는, 그래서 수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모범생 정치의 안철수가 아니었다. 영어에 improbable(그럴 것 같지 않은)이란 단어가 있다. 그때 내 느낌이 꼭 그 단어와 같았다. 물론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상 밖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안철수는 그의 ‘정당주의적’ 멘토들이 충고한 대로 독자 신당을 준비했고 지방선거에 내보낼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잘되지 않는다는 게 얼마 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한밤 기자회견 해프닝에서 드러났다. 그 시점에서 안철수는 진짜 현실의 벽과 맞닥뜨렸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기업을 해본 사람이므로 전해 들은 현실과 직접 겪는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이다.

안철수가 공들인 인물들이 무소속으로 나올지언정 민주당에도 새정치연합에도 속할 수 없다고 밝혔을 때 그는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은 독자적인 제3세력을 허용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안철수 주변에 모인 멘토들은 말만 그럴듯했지 아무런 정치력도, 정치적 도전의지도 보이지 못했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불가능한 원칙을 추구하지 않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타개책을 모색했다는 것, 그것도 논란을 무릅쓴 타개책을 모색했다는 것이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정치인 안철수의 바뀐 모습이다.

제3지대에서의 신당 창당, 5 대 5 지분에 의한 신당 창당이 말로만 동등한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표 하루 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웃음꽃이 피었으나 새정치연합에서는 낙담 혹은 반발의 분위기가 전해졌다. 겨우 2석의 안철수 세력이 126석의 민주당 세력을 대등하게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정치의 포기, 헌 정치로 투항이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신당 창당 합의가 신의 한 수인지, 또 다른 애송이의 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안철수의 운명이 달린 한 수인 것은 틀림없다. 여기서 실패하면 안철수는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는 정치에 뛰어들면서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승부를 제대로 건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승부를 걸어야 할 때 승부를 건 것만은 틀림없다.

리스크는 물론 독자 신당 추진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그래서 그것을 벤처 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벤처는 투기적인 것이다. 벤처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안철수 측 송호창 의원의 표현대로 그것은 맨손으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호랑이굴 밖에서 잡히지 않는 호랑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잡는다는 것도 진부하지만 사실이다. 그가 호랑이굴에 들어가 정치 개혁을 가로막는 호랑이를 잡아 내동댕이칠지, 아니면 지방선거 승리를 헌납해 호랑이 배나 불려주는 신세가 될지는 아직은 좀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안철수#김한길#신당 창당#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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