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줄 타고 들어와 정권 바뀌면 나가는 KT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4일 03시 00분


이석채 KT 회장이 어제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배임 혐의로 KT 본사와 이 회장의 자택 등 16곳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데 이어 9일 만에 다시 8곳을 압수수색하며 수사 강도를 높였다. 아프리카 출장을 다녀온 이 회장은 어제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일련의 사태로 인한 직원들의 고통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KT 사옥 39곳을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하는 등 배임 혐의와 측근 임원들에게 높은 연봉을 준 뒤 이를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최고경영자로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수사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 회장의 경영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정부 일각에서는 “오너도 아닌 이 회장이 오너보다 더 심하게 KT를 사유화(私有化)했다”는 평도 나온다. 그러나 전임 이명박 정부에선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KT 수사와 회장 사퇴는 5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 회장의 전임자인 남중수 사장도 2008년 연임에 성공했으나 이명박 정권 초기에 사퇴 압력설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 수사를 받고 물러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가 이 회장에게 사퇴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더니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고발한 내용에 대해 지난달 검찰이 전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탈탈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검찰의 저인망 수사에서 나온 결과에 얼마나 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회장은 이명박 정부 때 정권의 줄을 타고 KT에 왔다가 정권이 바뀌니 퇴진하는 셈이다.

KT는 2002년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공기업이 민영화한 회사다. 외국인 지분이 49%에 이르고, 정부 지분은 전혀 없는 민간 회사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바뀌고 있다. KT뿐만 아니라 포스코 KB국민은행 같은 기업에서도 정권 교체 직후에 최고경영자가 바뀌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 회사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알토란 같은 기업들이다.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은 오너가 따로 없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을 이사회에서 차기 경영자로 내정하는 안정적인 기업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도 민영화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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