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광식]한국 스포츠 ‘각본없는 감동드라마’로 복귀해야

  • 동아일보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1969년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의 축구경기가 열렸다. 당시 나이지리아에서는 비아프라전쟁 혹은 나이지리아내전으로 불리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만 명 이상의 군인이 죽고 2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전쟁 기간에 단 사흘간의 평화가 있었다. 바로 펠레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이 기간 휴전협정이 맺어진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해관계의 대립도 스포츠의 위대한 감동 앞에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렇듯 스포츠는 사회구성원을 통합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체험한 바 있다. 이제 스포츠는 국민생활의 일부분이 됐고 국제대회는 하나의 국가 제전이 되었다.

새삼 스포츠의 가치를 언급하자면 국민적 화합과 동질감 형성, 국민 건강 증진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가이미지 제고, 광범위한 경제적 파급효과와 국가경제에의 기여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스포츠의 큰 역할은 ‘게임의 룰’이 언제 어디서나 예외 없이 지켜진다는 신뢰로부터 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이 ‘각본 없는 드라마’에 열광하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체육계가 프로스포츠 종목에서 불거진 승부 조작 파문에 휩싸여 체육 주무 부처의 수장으로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공정성이 생명인 스포츠에서 ‘공모에 의한 승부 결과나 경기 내용의 조작’은 어떤 상황 및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승부 조작 파문은 우리 스포츠의 존립 근거를 뒤흔드는 심각한 사태다.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경기 조작 문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수립했다. 첫째, 승부 조작의 진원지인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통한 범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여 2월 17일부터 불법 스포츠도박을 운영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도박을 한 사람 역시 처벌받게 했고, 경기 조작 상시 모니터링체제를 운영하며, 자진 신고자에 대한 포상제도 강화 및 처벌 감면제를 도입한다. 둘째, 브로커의 접근 등 위해 환경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등록 선수 및 감독 코치진에 대한 관련 교육을 연 4회 의무화했고 선수의 복리 증진을 위해 최저연봉제 및 연금제도를 모든 종목에 도입하고 강화한다.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를 야기한 체육단체의 회계 부정을 예방하기 위해 회계업무를 전문회계법인에 개별 또는 공동 위탁하게 하고 예산 집행에 대한 수시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대학입시 체육특별전형자에게 발급되는 경기실적증명서의 발급 절차를 개선한다.

그리고 관련 기관과 학교 운동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우선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교 운동부를 점진적으로 주말리그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학교운동지도자 고용 표준계약서 제정과 학교운동지도자 등록제 등을 통해 지도자의 자질을 제고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체육계 내부 문제를 넘어 경기를 ‘공모에 의한 사기극’으로 변질시킴으로써 그동안 국민생활의 일부이자 활력소로 자리 잡은 스포츠를 국민에게서 빼앗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며 사회 문제다. 정부의 근절 의지 및 대책, 현장에서 뛰는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 등 모든 관계자의 실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이번 승부 조작과 관련이 없는 대다수 ‘각본 없는 드라마’ 출연진 및 제작진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스포츠는 선수들이 땀 흘려 이룬 기량을 정직하고 공정하게 겨루기에 감동을 준다. 이 정직하고 공정한 기율이 회복돼 한국 스포츠가 국민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