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논쟁이 뜨겁다. 대학생들이 도서관 대신에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를 벌이면서 대학 당국은 물론이고 교육계, 정부, 국회도 해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은 대학 재단 전입금 투입, 국가 재정 증액 지원, 기부입학제 허용 등으로 압축된다. 모든 학생이 돈 걱정 없이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초고속으로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그런 선택이 엄청난 재앙이 될 소지가 있어 우려된다.
외국에서도 단번에 대학 등록금을 50% 낮추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함께 노력해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주는 대학은 적지 않다. 미국 대학들을 보면 ‘기부연금(Charitable Gift Annuity)’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제도는 기부자가 일정 금액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기부한 다음 한 달, 넉 달, 1년 단위로 일정 금액의 연금을 받는 것을 말한다. 기부자는 계약이 성립되면 즉시 연금을 받을 수도 있고 5년 또는 10년 뒤부터 종신연금을 받을 수도 있다.
기부자의 연령이나 배우자 연금 수혜 여부에 따라 연금 액수는 달라진다. 미국 기부연금위원회가 공시한 이율을 보면 65세 기부자는 매달 5.3%, 75세 6.5%, 85세 8.4%, 90세 이상은 9.8%를 적용받는다. 75세 전후 고령자들이 기부연금에 가장 적극적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의회, 국세청 등도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법을 만들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학에 대한 신뢰, 기부가 주는 기쁨,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및 세제 혜택이 어우러지면서 대학에 기부하고 싶지만 기부한 다음 자신의 노후를 불안해하는 서민들이 기부자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대학들은 졸업한 동창을 1차 타깃으로 정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단연 선두는 하버드대다. 하버드대는 단과대학별로 기부 캠페인을 벌이는데 기부금 관리를 전담하는 하버드매니지먼트회사까지 설립했다. 현재 총 기부금 규모는 약 280억 달러이며 기부금을 운용해 연간 11%의 수익을 올려 대학에 돌려준다. 여기에 기부연금제도가 일조했다. 하버드대 졸업생이 최소 2만5000달러를 기부하면 자신이 낸 금액의 50%를 소득공제 받고 종신연금을 받게 된다. 기부 금액이 많지 않고 기부자가 장수할 경우 기부한 금액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도 있다.
기부자 시각에서 보면 모교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고 학교와 동창들로부터 노후를 보장받는 것이다. 대학도 기부자나 졸업생이 사망한 이후 유언 집행을 통해 받을 수 있던 기부금을 몇 년 또는 수십 년 앞당겨 확보하게 된다. 대학들은 이렇게 모은 기금을 학생 장학금과 교수 급여, 학교 시설 확충, 연구기금, 운영비 등 연구와 교육을 위해 쓴다. 미국 대학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흩어진 졸업생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 제도를 알리고 모금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기부연금제도 외에 기부신탁 등 다양한 제도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도입해 더 많은 장학혜택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이것이 미국 명문대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장학혜택을 줄 수 있는 비결이다.
우리 대학과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기부연금제도를 도입한다면 더 많은 학생에게 장학혜택을 주고 기부문화도 꽃피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기부에 동참하고 싶지만 노후 삶의 질을 고민하는 지식인은 물론이고 소시민도 망설임 없이 기부의 즐거움을 누리며 새로운 대학 복지모델을 실현하고 한국 교육의 미래도 밝히는 아름다운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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