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승함]‘한국병 정치’ 고쳐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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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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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가 5회에 걸쳐 기획한 ‘한국병 정치’ 관련 기사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민주화 20년이 훌쩍 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은 그야말로 숙고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단 한국병이 정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 각 분야와 비교했을 때 정치가 가장 덜 진화된 영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내년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지하게 우리 정치의 현실적 대안 모색에 동참해야 할 때다.

한국 정치의 첫 번째 문제로 지적된 국회의원 공천 문제는 실로 한국 정치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선량으로서 정치가(statesman)의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치꾼(politician)으로 전락하게 되는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재공천을 포기하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국회의원들은 오로지 공천을 위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진화하기 위해 당내 민주화가 이뤄져야 하며 그 첫 번째 단추가 공천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이다. 계파 공천을 타파하기 위해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정당정치 쇠퇴, 경선비용 증가, 경선 탈락자 반발 등의 이유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과연 하향식 밀실공천을 없애고 상향식 민주공천을 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당원들이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한국 현실에서는 당원 간 반목과 당원 동원 등의 부정적 측면이 우려된다. 또 당원의 활동이 미약하고 대중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당원경선제는 국민경선제가 가지는 정당정치 저해 문제를 극복하면서도 오히려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원 간의 반목은 어느 공천제도에서도 발생하는 일이며 이는 공천된 후보의 리더십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당원의 무리한 동원 또는 조작 등에 대해서는 당원의 투표권에 제한을 두면 된다. 즉 일정한 조건의 자격을 취득한 당원(당비 납부 및 6개월 또는 1년 이상 당원 경력 등)에 한해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국 정치의 병은 국회에서의 폭력, 폭언과 독설, 여야 간 극한투쟁 등이다. 폭력정치와 대립정치는 오랜 권위주의 독재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만둘 때다. 오늘날의 국가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폭력적 행동은 법률로 엄격히 다루어야 한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제대로 가동해 부적절한 폭력적 언행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을 제외한 사회적 대표 인사들로 구성해 객관적 심의를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관용적 정치문화를 이루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관용이란 경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정한 게임 규칙에 따라 경쟁과 타협을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민도 극한적 대립과 폭력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가장 엄중한 책임 추궁은 선거에서 낙선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권자의 태도가 한국 정치를 치유하는 궁극적 열쇠이다. 이미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은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진화돼 있다. 유권자들의 균형적 투표 행태는 여러 선거에서 정치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구태(묵종주의, 연고주의, 청탁주의 등)를 타파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화와 설득, 타협, 협력, 관용이 주제어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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