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형삼]대(竹) 그림자,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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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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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법정 스님 1주기에 출간된 사진집 ‘비구, 법정法頂’에 눈길을 오래 붙잡는 사진이 있다. 스님이 양손에 찻잔과 안경을 들고 앉은 모습, 그리고 빳빳하게 ‘각’을 잡은 행전을 차고 걷는 뒷모습이다. 두 장 모두 스님의 얼굴은 담지 않았지만 그의 면모를 오롯이 압축해 보여준다. 찻잔과 안경은 글을 가까이한 스님에게 평생의 벗이었을 텐데, 그것을 쥔 손은 울퉁불퉁한 농부의 손이다. 만년에 제자들의 보살핌을 마다하고 “나는 혼자 죽 끓여먹을 팔자”라며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한 흔적이다. 겨울이면 꽝꽝 얼어붙은 개울에 도끼를 내리쳐 마실 물을 길었다. 행전은 바짓가랑이를 가든하게 둘러싸려고 무릎 아래에 매는 헝겊인데, 여간 단정하고 바지런하지 않으면 건사하기 힘든 물건이라 요즘은 절집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한다.

법정 스님과 교분이 두터운 이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직업, 종교, 나이, 이념 성향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속가(俗家) 상좌들처럼 그를 따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들이 묘사한 스님은 한없이 자비롭고 인자한 ‘산부처’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까다롭고 괴팍스러운 영감님’이라 했다. 그런 성정은 스스로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한 태도에서 비롯된 듯했다.

스님은 방문객이 계속 몰려들면 어느 순간 딱 선을 긋고 “법당에 절이나 하고 가시오”라며 매몰차게 돌아섰다. 말씀 한마디 들으러 먼 지방에서 찾아온 이들도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정을 전하면 “수행자는 때로 인정이 없어야 한다.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주면 내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했다. 명리에 어정쩡하게 매달리지 않기에 무 자르듯 맺고 끊을 수 있는 절제다.

어느 여름날, 동화작가 고(故) 정채봉 씨가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을 찾았다. 스님이 안 보여 낮잠을 주무시나 싶었는데 인기척에 스님이 암자 뒤쪽에서 걸어 나왔다. “이 더운 날 뭘 하고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스님은 “졸음을 쫓느라 칼로 대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나른한 한여름 낮, 보는 이 아무도 없는 암자에서 홀로 맑게 깨어 있으려고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대나무를 깎는 수행자의 결기. 정 씨는 그 칼날 같은 자기 감시에 할 말을 잃었다.

어느 세무공무원은 스님에게서 이런 글귀를 받았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한 톨 일지 않고, 달이 물 밑을 뚫어도 물 위엔 흔적조차 없네.’ 곧게 뻗은 대(竹) 그림자가 뜰을 쓸어내고 환한 달빛이 물 밑을 샅샅이 비추는데 정작 대와 달은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리(稅吏)도 가슴 깊이 새길 덕목이지만 이는 스님이 일생토록 실천해 온 종교인의 자세와도 닮아 있지 않을까.

이슬람채권법안과 관련해 기독교계에서 대통령 하야 발언이 나오더니, 대통령을 무릎 꿇린 통성기도를 놓고 불교집회에서도 “장로 대통령은 하야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라”는 말이 나왔다. ‘대 그림자’와 ‘달빛’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처신이 아쉽다. 다행히 같은 집회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불교가 홀대받는 것은 스스로 화합, 결속하지 못했고 사회적 역할도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칼끝을 돌리고 자성을 촉구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부처에 얽매이면 참부처를 볼 수 없고, 보살에 얽매이면 진짜 보살행을 할 수 없다”던 법정 스님의 설법이 비단 불자들만 귀 기울여야 할 경구는 아닐 것이다.

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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