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性불평등 없는 그날까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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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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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1908년 3월 8일 대공황에 따른 경기 침체로 생활고에 허덕이던 미국 섬유산업 여성노동자 수만 명이 뉴욕에서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어 독일의 사회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의 주도로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세계 여성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첫 행사가 열렸다. 훗날 유엔은 미국 여성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해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女高男低 일상화되었지만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의 감회가 새삼스러운 것은 한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이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 덕분일 게다. 최근 언론은 연일 여풍당당의 도전과 ‘여고남저’(女高男低·성적 우수자의 다수가 여성인 현실을 지칭) 등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2010년 국가고시 합격자 중 여성은 행정고시 44.7%, 사법시험 42%, 외무고시 60%로 역대 최다 합격률을 보였고, 명문대 수석 합격 및 수석 졸업자의 다수가 여성이요, 언론사 및 대기업 지원자를 입사성적 순으로 줄 세우면 남성은 발붙일 곳조차 없다는 푸념이 들린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이젠 기회균등할당제로 유능한 남성이 피해를 보는 역차별이 문제요, 차제에 군(軍)가산점제도 부활시키고 남성교사 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엄마 세대와 딸 세대의 삶을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작년 공직에서 은퇴한 선배 왈, 입사 초기엔 남녀평등이란 단어만 적어도 그 위에 ‘가화만사성’이라 써 돌려보내곤 했다는데, 이젠 ‘젠더 주류화’(젠더 이슈를 주류정책 속에 통합)까지 이르렀으니 정말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눈을 글로벌 무대로 돌려보면 우리네 젠더 불평등의 현주소는 경제력 12∼15위권 위상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하다. 일례로 국가별 남녀권한척도를 보면 2004년 78개국 중 68위, 2008년 108개국 중 68위를 기록했고, 2007년 기준 1위인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의회 여성점유율은 37.9% 대 13.4%, 행정관리직 여성비율은 30% 대 8%, 전문기술직 여성비율은 50% 대 39%, 그리고 성별 소득격차는 0.77 대 0.40에 그쳤다.

2010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 또한 138개국 중 20위에 머물렀다. 부문별로는 경제활동참여율이 90위로 가장 열악하고, 다음이 정치참여로 82위, 모성건강은 38위, 교육은 31위 수준이다. 그 결과 작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한국의 성격차지수는 134개국 중 104위로 남녀 간 불평등이 현격한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희석시키지 않으려면 여성의 삶에 겹겹이 부과되었던 명백한 차별 장벽을 걷어내는 데 공을 세운 선배 여성들의 피와 땀을 기억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미묘한 차별, 비공식적 차별, 숨겨진 차별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낼 수 있도록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성불평등지수 여전히 하위권

나아가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는 ‘이주의 여성화’ 및 ‘빈곤의 여성화’ 속에서 여성 집단 내부의 분화 및 이질성이 증가하는 것에도 주목해 새로운 소수자 집단으로 부상 중인 이주여성, 탈북여성, 빈곤여성의 삶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젠더 불평등을 역사적 부정의나 구조적 차별의 결과라기보다 개인의 무능이나 불운의 탓으로 돌리는 반동적 흐름을 경계하면서, 진정 타고난 성별로 인해 차별받고 억압받고 배제되는 현실이 완전히 불식될 때까지 우린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김질해야 할 것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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