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완석]러, 외교적 우군 만들 지혜 모아야

동아일보 입력 2010-09-29 03:00수정 2010-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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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지 30일로 만 20주년을 맞는다. 국교 수립 20년의 경과를 냉철히 결산해 볼 때 양국관계는 수교 초기의 희망과 기대의 시기, 실망과 냉각의 시기, 객관적 현실에 대한 적응기, 동반자적 협력기로의 진화과정을 거쳤다. 이 기간 20차례의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교역액은 2008년 말 기준으로 180억 달러에 이르렀다.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외교 수준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이처럼 지난 20년의 성상(星霜) 동안 한-러 관계가 적지 않은 불협화음과 파열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양국관계의 발전 속도와 질적 수준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과 러시아가 갖는 상호협력 가능성과 잠재력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가 부족했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지정학적 협력의 밀도나 지경학적 상호작용 수준면에서 미중일러로 대표되는 주변 4강 가운데 한-러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고 무역규모도 가장 작은 게 사실이다. 양국관계가 2년 전에 전략적 관계로 격상되었지만 외교적 수사와 실질적 협력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해 엇박자를 드러낸 경우가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수교 이후 한-러 관계 발전을 지체시킨 요인으로 국익교환의 불균형, 상호 추구하는 정책목표의 비대칭성, 남북한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현실, 한미동맹 구조,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냉전적 시각을 지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대한 관성화된 이미지에서 탈각하여 새로운 대러 정책의 패러다임을 모색한다면 향후 양국관계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다양한 긍정적 요인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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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러 간에는 우호적 협력 확대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영토 분쟁, 민족 갈등, 역사 불신이 없다. 또 대외 지향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한국 경제는 기술과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 경제와 자연적인 상보성을 가진다. 러시아는 한국 경제의 배후지로서, 한국은 러시아가 아태지역 경제와 결합하는 교두보로서 양국의 협력강화는 상호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준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해서 한반도의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창설, 유엔의 역할 강화 등 한반도 및 동북아의 주요 국제적 현안에 대한 양국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지경학적 연계성이 현저히 증대되어 간다는 점도 양국관계 발전을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이 추구하는 일련의 중요한 경제이익, 이를테면 한반도 종단철도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구축, 대규모 신규 상품 및 건설시장 개척,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 첨단 선진 기초과학 원천기술 입수, 한국이 꿈꾸는 우주항공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은 모두 러시아와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다.

21세기 러시아가 한국에 부여하는 일련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기회의 창은 대러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야 할 중요한 당위성을 제공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한반도의 현실은 러시아에 대한 21세기적 사고를 요구한다. 러시아도 변하고 세계도 변하는데 우리만 동북아시아의 귀퉁이에서 과거의 잔영을 되씹으면서 시간의 미로 속을 헤맬 수는 없다. 시장민주주의 국가로 새롭게 변신한 세계적 권력보유자 러시아를 한국의 경제이익과 안보이익 확보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면서 외교적 자원으로 동원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한-러 수교 20주년이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새로운 대러 전략관이 태동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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