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역지사학(易地思學)

동아일보 입력 2010-09-15 03:00수정 2010-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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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다. 지난달 발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학자에서부터 사교육업자들까지 교육전문가임을 자부하는 이들 중 열에 하나는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개편안을 만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중장기 대입 선진화 연구회’가 “교육의 본질을 망각하고 학교의 현실도 모른 채 개편안을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개편안은 대학 전현직 입학처장들과 교육학자들이 중심이 된 연구회 내 분과위원회에서 만들었다. 분과위원장은 서울대 교육학과 백순근 교수다. 그는 지금 모든 입시교육 문제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입시를 총괄하는 입학관리본부장이다. 그런 그가 교육의 문외한(門外漢)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론의 요지는 명쾌하다. 교육과정이 국어 영어 수학 중심으로 왜곡되고, 수능 과목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은 학생들에게서 외면받게 돼 다양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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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에 자율형 공립고의 원조인 부산남고의 교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부산남고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은 1학년 때 무슨 연구를 어떻게 할까 생각해야 한다. 2학년 때는 연구 주제를 기획하고 연구를 마친 뒤에는 논문을 써내야 한다. 모두 수능과는 관계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 과정을 즐기고 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학생 개개인을 더 잘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다른 학교 교사들은 입학사정관제 추천서를 써줄 때 쓸 거리가 없다고 고민하는데 우리는 쓸 게 많다”고 자랑한다.

다양한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무작정 많이 먹이면 탈이 난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유익하다는 이유로 쌓기만을 거듭해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배워야 할 과목, 시험 봐야 할 과목은 계속 늘어만 왔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른 창의교육과도 거리가 멀다. 한 교육계 인사는 “진정한 창의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여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육계 인사도 “이제는 교육에서 빼기를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중장기 대입 선진화 연구회’ 위원으로 개편안 논의 과정에 참여했었다. 개편안은 최종 발표되기 전까지 분과위원회 내에서 몇 차례 큰 수정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일부 교육학자들은 개편안에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열린 위원회 총회에서는 30여 명의 위원 간에도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만큼 연구회 위원 중 누구도 개편안 발표 후 불어닥칠 ‘후폭풍’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 끝까지 참여한 것은 학생들, 아니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원 모두 개편안의 답을 자기의 눈이 아닌 학생들의 눈에서 찾으려고 했다.

발표된 개편안이 완벽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난에 앞서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 아이를 언제까지 밤늦게까지 학원에 붙잡혀 있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공부에 짓눌려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조기 유학을 떠나는 아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지.

이현두 교육복지부 차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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