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준우]공릉중 축구부도, 이청용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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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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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릉중 축구 선수들은 정규 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부터 운동한다. 이들은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으며 학업성적도 좋은 편이다. 대개 80점 안팎이며 4명은 90점대다. 1학년 때 27점을 받은 학생이 3학년 때 75점까지 오른 적도 있다. 공릉중 축구부원들은 대부분 서울 가락고로 진학한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가락고 축구부는 지난해 전국대회 4강에 들었다.

공부 병행… 진학 포기 프로행…

공릉중 축구부가 창단한 2004년 학업을 중단한 선수가 있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 FC 이청용 선수다. 그는 서울 도봉중 3학년 때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중퇴했다. “축구에 인생을 걸었기에 졸업장엔 미련이 없다”는 게 서울 FC 2군 입단 소감이었다. 이 선수와 동갑내기 2명도 서울 FC 2군에 함께 발탁됐다. 이들은 K리그 1군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공릉중 축구부원과 이청용 선수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을까.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을까, 어느 한쪽을 과감히 선택하는 게 좋을까.

축구의 경우 학생 선수는 1만8500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고교 선수는 4700명, 대학 선수는 2400명 선이다. 매년 K리그는 140명, N리그(실업리그)는 130명가량의 선수를 선발한다. 졸업자와 대학 진학자를 감안하면 해마다 1600명의 고교 또는 대학 선수가 사회로 배출되는 셈이다. 이들이 프로 또는 실업 선수가 될 확률은 16%가량이다. 고교 이상 학생 선수는 대부분 직업 선수가 꿈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학교는 이들이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국스포츠교육학회지(11권 2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는 교실에서 소외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진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루 대부분을 운동으로 보내기보다 학업을 병행할 때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고 주체적인 삶의 의지가 생긴다는 연구(한국스포츠교육학회지 16권 1호)도 있다. 학생 선수가 공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공릉중과 가락고 선수는 이런 점에서 올바른 선택을 한 셈이다. 학생 선수에게 학업은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일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부하는 학생 선수 지원 시범사업’을 하기로 한 이유다. 학생 선수의 정규수업 이수율을 2007년 현재 69.9%에서 2012년 100%로 높인다는 게 이 사업의 목표다. 방학이나 주말에만 경기를 하고, 성적이 목표치를 넘긴 학생만 선수로 활동하는 최저학력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학업을 포기한 이청용 선수는 나쁜 선택을 한 것일까. 역시 올바른 선택이었다. 작곡가 선수 소설가 심지어 범죄자도 경지에 오르려면 대략 1만 시간, 하루 3시간씩 약 10년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맬컴 글래드웰의 주장이 유행하기 이전에도 긴 시간에 걸친 피나는 노력은 훌륭한 운동선수의 필수 조건이었다. 6세 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연아 선수는 세계선수권을 차지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학교가 학업만을 이유로 훈련 시간을 줄이고 대회 출전을 불허했다면 오늘의 김연아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부지원도 학생 선수 선택 존중을

진심으로 자신의 미래를 가꾸는 학생 선수에겐 훈련이나 대회장도 창조적인 공부의 장이다. 책에 갇힌 문자가 공부의 전부는 아니다. 교과부가 유망 선수에게 가능성을 열어 놓으려면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장과 현장 지도자의 자율적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자율성은 씨앗을 다양한 나무로 키우는 자양분이다. 이래야 김연아 이청용 선수보다 우수한 선수가 학교에서 나올 수 있다.

하준우 편집국 부국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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