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자원봉사는 미국 지탱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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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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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시내 14번가 서북쪽의 허름한 거리에 ‘마르타즈 테이블’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빈곤층 자녀들을 교육하는 비영리단체다.

일요일인 22일 이곳에서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칠면조 요리를 나눠줬다. 이들에게 추수감사절 ‘특식’을 제공하기 위해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분주히 움직였다. 야외 잔디밭에 식탁을 마련하고, 야채를 썰고, 음식을 나르며 나중에 뒷정리까지도 자원봉사자들이 다 했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23일에도 인근 사립초등학교 학생 20여 명이 이곳을 찾아와 준비한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곳에는 해마다 100만 달러어치의 음식이 기부된다. 또 ‘알뜰가게’에 기부된 헌 옷가지를 팔아 마련되는 돈만도 한 해 100만 달러나 된다.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린지 버스 사장은 9년 전만 해도 워싱턴 변호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K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그는 이곳에 합류하기 전 유명 로펌인 ‘깁슨 던 앤드 크러처’의 변호사로 7년 동안 근무했다. 이곳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하기 위해 로펌에 사표를 냈을 때 동료 변호사들은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버스 사장은 기자에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곤경에 처한 가난한 이웃을 도와준다는 뿌듯한 자기 만족감이 그의 얼굴에 가득 배어 있었다. 해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만 명을 훌쩍 넘는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느낀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던 이달 7일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에서는 4∼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신종 플루 예방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 행사가 열렸다. 오전 9시부터 선착순으로 1만 명의 아이들을 받는 바람에 새벽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로 시 청사 주변은 장사진을 쳤다.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도 큰 혼란을 빚지 않은 것은 현장 곳곳에서 노란 띠를 가슴에 두르고 사람들을 안내하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었다. 처음엔 안내요원들이 모두 이 지역 공무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시 청사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대기자들의 첫 열에서부터 접종을 마치고 나가는 마지막 줄까지 곳곳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길게 늘어선 줄에서 지쳐 가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나눠주고, 부모들에게 질문지를 작성하도록 안내하면서 접종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애썼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는 ‘Peer Tutoring’이라는 학생봉사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우리말로 하면 ‘동료 가정교사’인 셈인데, 수학이나 화학 물리 생물 외국어 등 기초학문 분야에서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뒤처지는 동료 학생들에게 방과 후에 가르쳐 준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미국 대학에선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유학생과 원어민 학생을 1 대 1로 맺어 영어를 가르쳐주는 경우도 많다. 봄, 가을 주말이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인기를 끄는 YMCA 축구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코치는 대부분 자원봉사를 자처한 부모들이 도맡고 있다.

자원봉사는 미국인들에겐 생활의 일부분이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을 지탱하는 힘은 이들 자원봉사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는 사람들만으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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