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東西연합론의 허실

  • 입력 1999년 1월 29일 18시 55분


여권과 대구―경북(TK)을 잇는 정치적 또는 정책적 연합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원내총무가 여권과 TK의 정치연합을 거론하자 한나라당 김윤환(金潤煥)의원은 TK―보수세력 신당을 통한 여권과의 정책연합을 제시했다. 막후교감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양쪽 발언이 모두 동서(東西)연합을 상정하는 것이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동서갈등은 이 나라의 뿌리깊은 치부의 하나다. 그것이 김대중(金大中)정부 들어서도 치유되지 못하고 새로운 형태로 불거지면서 국정추진에까지 장애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완화하려면 정치에서부터 장벽을 허물어뜨릴 필요는 있다. 형편이 훨씬 다급한 쪽은 여권이겠지만 야당으로서도 동서분할구도가 반드시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연합론은 정치현실에서 일정한 당위성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발언은 현단계에서 실현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당장 TK출신 야당의원 대다수가 일소(一笑)에 부치고 나섰다. 자민련도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성이 박약한 논의를 불쑥불쑥 던지는 것은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국민의 정치불신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동서연합론같이 중대한 문제가 최소한의 현실검증이나 준비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제기된다면 지역갈등을 오히려 악화시킬지도 모른다.

특히 여당 간부가 ‘떡 줄 사람’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여당의 정치적 미숙을 드러내고 불안감을 확산시킬 뿐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이 정계개편을 쉴 틈 없이 운위한 결과가 어땠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야당의원 개별영입으로 원내 과반의석은 달성했지만 그것 때문에 정쟁이 격렬해지고 동서갈등은 심해졌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구나 여야총재회담을 열자는 마당에 그런 말을 해서 총재회담을 어렵게 만들고 야당의 영남 장외집회에 구실을 보태준 것은 큰 잘못이다.

여권이 야당인사 몇 사람과 손잡는다고 동서화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과거 정권들이 호남인사들을 끌어들였어도 지역화합이 안된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지역화합을 위해서는 민심을 잡아야 한다. 정계개편도 당연히 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90년 3당합당의 결과적 실패가 입증하듯 정략적 정계개편은 성공할 수 없다.

여권 일각에서 ‘신 3당 합당론’도 흘러나오지만 그것은 더욱 안될 말이다. 정계개편이 특정지역 고립화를 초래한다면 국가적 불행이며 정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역연합이 성공하려면 세심한 준비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는 이념과 노선에 입각한 연합이어야 옳고 또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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