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암 연구소에서 열린 희귀질환 보장 강화 심포지엄에서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이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환자들은 병마와 싸우는 동시에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제도와 싸우고 있습니다.”(김현주 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 대표) “하루 세 알 먹어야 하는 치료제가 너무 비싸 한 알만 복용한다는 환자들도 많습니다.”(정미경 한국폰히펠린다우증후군(VHL) 환우회 총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 새 정부 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 방향은’ 심포지엄에서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은 이같이 호소했다.
저인산효소증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뼈와 치아, 근육 등 전신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다. 통증과 골절 위험 때문에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국내 환자 수는 약 50명. 치료제가 있지만 사용 조건과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까다로워 환자 상당수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조기 진단이 어려워 성인이 돼서야 진단받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제 사용은 ‘소아기 발병 환자의 골증상 치료’ 등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저인산효소증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2명뿐이었다”며 “승인된 치료제가 있지만 진단의 어려움, 비용의 장벽, 보험의 부재 등 현실적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치료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폰히펠린다우증후군(VHL)은 여러 신체 장기와 기관에 종양을 유발하는 복합 증후군이다. 환자의 절반 이상은 중추신경계 내의 혈관아세포종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의 약 80%는 유전으로 발병해, 대를 이어 병마와 싸우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 총무는 유일한 치료제인 ‘웰리렉’의 급여화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폰히펠린다우증후군 환자 대다수는 하루 정량인 세 알보다 적은 한 알을 복용하고 있다. 90알 기준으로 한 달 약값이 약 2200만 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는 “웰리렉이 이번 달 건강보험심사평원의 중증질환심의위원회에서 꼭 급여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내 희귀·중증질환 환자들은 신약이 개발돼도 국내 도입이 지연돼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처음 출시된 후 국내 급여화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46개월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이후 1년 이내 한국에 도입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일본 3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8%에 크게 못 미친다. 신약이 한국에서 급여로 등재되는 비율도 22%로, 일본(45%)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지난달 희귀·중증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약가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희귀질환 신약의 신속 등재를 추진하고, 신약의 ‘비용 대비 효과 평가 지표(ICER)’를 개선해 혁신 신약 가치를 더 인정해 주는 내용이다.
이날 패널 토의에서 서혜선 경희대 약학과·규제과학과 교수는 “희귀·중증질환 치료제는 경제성 평가 방식을 적용하더라도 평가 속도를 높이고 근거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선사용 후평가’ 방식으로 접근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ICER 임계값 역시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희귀·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존 경증 질환에 투입되던 건강보험 재정을 전환하는 데 대해서는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더욱 넓혀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상희 화순전남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혈액종양내과 교수)은 “건강보험 급여 적용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약가제도 개선을 통해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이 보다 신속하고 공정한 치료 기회를 보장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과제”라며 “환자단체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희귀·중증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을 100일 이내까지 단축하는 안을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며 ICER의 임계값을 질병 위중도와 치료 성과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함으로써 등재가 지연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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