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때 문화예산을 전체 예산의 1%가 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같은 공약은 벌써 5년전 현정부가 내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간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98년 예산에도 흔적이 없다. 문체부 예산이 총예산의 0.62% 정도이며 그나마 순수한 문예진흥관계 예산이 0.1%에 불과하다는 것, 그 「문제점」을 김후보도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이다.
▼예산보다 효율성 따져야▼
그러면 김대중당선자는 공약을 지킬 것인가. 문화계 인사들은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목을 건 경제상황 그리고 전반적인 긴축이 불가피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들 본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드러나지도 않는 문화분야에 재원을 돌린다는 게 어려우리라는 건 뻔한 이치다.
문화계 인사들은 솔직히 말한다. 지켜서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그것이 꼭 된다고 뭐가 그리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한다. 예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문화 예술이 여물고 삶이 문화적 예술적으로 가꾸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체부를 비롯한 관련 공직이, 혹은 관변의 무슨 문화진흥단체나 그 종사자가 윤택해질지는 몰라도 문화계가 발전한다는 얘기와는 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 주장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문화예산을 늘리면 우선 눈에 띄는 건물부터 짓고 큰 간판부터 달았다. 그 다음 문화단체 종사자 일부를 어용화하고 관변화하며 정작 문화의 본질이라 할 「소프트웨어」의 진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돈주고 지원해서 나온 문화상품들은 예외없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생명이 짧았다.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것들은 시혜받지 않고 꿋꿋이 커온, 자생력을 갖춘 것들 뿐이지 않는가.
따라서 예산 증액만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예산이나 관련 재원의 배분 집행이 참으로 문화와 예술진흥에 효율적인지를 따지고, 현재의 기구들이 이 시대의 문화 예술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성격인지를 점검하고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군사정권시절의 유산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닌지, 퇴직 공무원들의 은신처나 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리드하는 조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당선자가 후보로서 내걸었던 『5천억원 이상의 문예진흥기금과 3천억원 규모의 문화산업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한 공약도 그런 타당성과 현실성을 검토해가며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 이 나라의 방만한 기금조성과 운용이 숱한 낭비와 비효율을 부르고 있음은 수없이 지적되어 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긴축해야 할 이 시기에 불요(不要)한 기금을 모으는 것도, 불급(不急)한 데 돈을 쓰는 것도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野총재」스타일 위험▼
또 한가지, 김당선자는 지금까지 일본 대중문화 개방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공사석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당연히 개방되어야 한다. 늦으면 그만큼 우리가 손해다』라고 말해왔다. 일본이 그들의 영화와 가요 시장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벌써 수십년이 되었다. 큰 틀에서 인위적으로 막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고 빗장은 이미 풀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의 문화 정서와 부닥치고 산업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어 아직까지 양국간의 현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의 팽팽했던 찬반양론도 이제 점진적인 개방쪽으로 방향이 잡히는 분위기다. 그러나 김당선자가 이 문제에 관해 「야당총재적」스타일로 명쾌하게 풀려고 하다가는 상당한 난관에 부닥칠 소지가 있다. 개방이라고 하는 대명제는 옳아도 절차나 방식이 매끄럽지 못해 소란을 부른다면 그것은 「준비된 대통령」의 솜씨라고 할수없다.
김충식(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