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새내기 철학입문서’ 20선]<8>남경태의 스토리철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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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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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태의 스토리철학 18 / 남경태지음·들녘

《“철학은 분명히 현실적인 용도가 있을 뿐 아니라 알고 보면 무척 광범위한 실용성을 가진다. 철학은 모든 학문적 사유의 바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 문제는 기초 학문과 응용 학문의 연결, 철학의 진정한 쓰임새가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학을 안다고 해서 갑자기 생활이 편리해진다거나, 성적이 올라간다거나, 봉급을 많이 받지는 않는다.”》

18가지 상황 속 철학적 사유연습


철학은 긴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 현실 세계의 조건에 영향 받지 않는 순수한 사유의 산물이었다. 추상적 사고의 훈련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철학이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스토리’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이 생겨났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사건들에 어떻게 철학적 사유를 응용할지 설명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같은 접근에 취약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철학과 현실을 결부한 책 대다수가 철학을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침’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지침을 주는 윤리와 도덕도 철학의 한 부분이지만 철학의 본질은 아니다. ‘어찌 보면 지하철 노선도보다도 쓸모없는 철학’을 삶과 연결하기 위해 스토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여러 상황제시형 철학입문서와 비슷하다. 그러나 저자는 일상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내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18개 예화들은 순전히 철학적 사유를 훈련하기 위한, 때로는 극단적으로 작위적인 상황들이다.

‘꿈의 발명품’ 편에서 저자가 내세운 주인공은 입시를 앞두고 ‘투명인간’이나 ‘시간정지장치’를 꿈꾸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험생이다. 그는 투명인간이나 시간정지장치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투명해지려면, 또는 다른 모든 사물이 정지하고 ‘나’만 움직이려면, ‘나’와 ‘외부’의 경계는 어디서 시작되어야 할까? 내가 투명해지면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은 투명하겠지만, 잘라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이처럼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상황을 제시한 뒤 저자는 비로소 이와 관련된 철학적 주제를 제시한다. ‘꿈의 발명품’과 관련된 주제는 ‘주체와 세계와 인식’이다. 근대 철학에서는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어 후설의 현상학은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선험적’인 의식을 중시했다. 19세기에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하자 주체 자체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됐다.

‘악마와의 계약’ 편에서 주인공은 바퀴벌레로 변신한 악마를 구해준 대가로 손대는 일마다 대박을 터뜨린다. 그러나 자신은 돈이 잘 흘러가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로 전락했음을 느낀 주인공은 악마에게 계약 만료를 선언한다. 이 이야기가 제시하는 주제는 ‘의식과 분리된 욕망’이다. 욕망을 처음 철학적 체계에 포함시킨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그에게 욕망이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현대에 들어와 프랑스의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이란 결핍과 소비라는 기존의 관념을 부정한다. 이제 욕망이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 된다.

18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스토리들이 예외 없이 추상적 사고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매체’ ‘창작’ ‘거대담론’ 등 현대에 철학적 논증의 장에 들어온 사회적 주제들도 다뤘다. 출판 편집자의 데스크에서부터 인터넷 철학 카페, 중세의 수도원을 오가는 다채로운 상황 설정이 한결 친근하게 철학을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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