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진실에는 힘이 있다

  • 입력 2007년 7월 13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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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동 둘레가 족히 두 아름은 될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중늙은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고 있었다. 마늘과 오미자, 상황버섯, 장뇌삼 등 온갖 건강식품 얘기에서부터 뉘 집 혼사(婚事)에 이르기까지 두서없이 오가던 대화가 시들해질 무렵 한 사내가 화제를 돌렸다.

저 사람들 제 정신인가

그나저나 저 사람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 사람들이라니?

누구긴 누구야, 이명박이와 박근혜지.

만날 싸우는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이던가. 그 얘기라면 아예 꺼내지도 말게. 요즘은 매일 신문 보기도 지겨우니까.

그야 그렇지만 이대로 두고 볼 수만도 없지 않은가.

두고 보지 않으면 자네가 나서서 뜯어말리기라도 할 텐가. 어차피 둘 중 하나로 결판이 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싸움이거늘.

그러게 말이야. 누구 말처럼 눈앞에 청와대가 어른거리는데 어느 쪽인들 쉽게 포기하려고 하겠나. 자기들끼리 싸움에서 이기면 대권은 따 논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판에.

바로 그게 틀렸다는 걸세.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게 어디 그들이 잘나서인가. 노무현 정권이 워낙 인기가 없는 덕이지. 이제는 이념보다 실용, 민주화보다는 일자리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보수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야. 그렇다면 그런 국민의 바람에 부응해 그들의 기대가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줘야지, 서로 내가 하겠다고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이다니 원. 이러다가 승부가 갈린다고 패자(敗者)가 진심에서 승자(勝者)의 손을 들어 줄 수 있겠나. 어쩌면 앞으로 이 점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지도 몰라.

도대체 한나라당의 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내가 보기에 이명박당, 박근혜당만 있지 한나라당은 보이지 않네. 당 대표라는 사람이 벌써부터 경선에서 2등 한 사람에게 당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무슨 영(令)이 서겠어. 그러니 당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이명박 씨 처남이 덜컥 검찰에 고소부터 하지.

아, 이명박 씨 처남인 김재정 씨야 한나라당 사람도 아닌데 굳이 당과 고소 건을 상의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야 틀리지 않지. 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가 김 씨가 매형인 이명박 씨와 상의도 없이 박근혜 씨 측을 고소했다고 믿겠느냐고. 그런 판에 고소 취소는 김 씨가 못하겠대서 안 된다고 해서야 아무래도 앞뒤가 잘 안 맞잖아.

그거야 자신은 결코 ‘이명박 재산관리인’이 아니라는 김 씨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봐. 김 씨도 낼모레 환갑인 나이에 자기 사업체가 있는 사람인데 매형이 하라는 대로만 할 수 있겠나.

아무튼 이-박 경쟁이 도(度)를 넘어 끝내 검찰까지 불러들인 것은 자기들 말마따나 ‘바보 같은 짓’이지.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다음 대통령은 계좌추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니 저 사람들이 정말 제정신인지 모르겠어.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명박 씨는 “남의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가진 적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이면 되지.

말이 쉽지 그게 간단하게 증명되겠는가.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는 계속 트집을 잡을 테고. 그럴 바에는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에 맡기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글쎄, 지금 검찰이 아무리 예전 검찰은 아니라고 해도 지난 대선 때 ‘김대업 식 수사’처럼 시간 끌며 의혹만 부풀렸다가 승패가 가려진 뒤 혐의 없다고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야. 그렇다고 당 검증위원회에 맡겨 봤자 수사권도 없는 검증위가 뭘 어쩌겠나. 자칫 당의 분란만 더 키울 수 있지. 이미 당 지도부가 누구 편이네 하고 시끄럽지 않나.

무슨 묘수가 있겠는가

내 결론은 이러하네. 이명박 씨든 박근혜 씨든 자신들과 연관된 의혹의 진실을 스스로 밝히고 국민의 판단에 맡기는 거지. 진실에는 그 자체의 힘이 있는 법이네. 진실의 힘이 뒷받침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권력의 부당한 개입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어. 이제 와서 달리 무슨 묘수(妙手)가 있겠는가.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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