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플라자]소비자금융 전국시대

  • 입력 2002년 1월 14일 17시 27분


금융권이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소비자금융 시장을 놓고 전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190조원의 자산을 가진 거대 국민은행이 개인고객이라는 수익기반을 토대로 지난해 1조5000억원대의 순익을 올리자 다른 은행들도 이 부문 공략에 사활을 걸었다.

전통적인 소비자금융업체인 카드사 캐피털사 등이 소액대출 시장에서 은행권의 파상공세에 맞서고 있고 그 사이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 금융기관들이 저소득층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여기에 조달금리가 거의 0%에 가까운 일본계 사금융업체까지 급전(急錢)시장을 파고든 데다 미국계 사금융업체도 진출채비를 갖추고 있어 한국의 소비자금융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본격적인 소비자금융시대〓신용사회인 미국 일본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 소비자금융이 본격화됐다. 구체적으로 8000∼1만6000달러 수준. 미국을 대표하는 소비자 금융업체인 GE캐피털은 이 같은 시장환경 변화를 틈타 GE그룹의 전체 자산중 80%, 순익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99년 8500달러에서 2005년쯤 1만5000달러에 이를 전망.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기관들이 눈을 뜬 소비자금융시장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보험사들의 시장 진입〓시중은행들이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은 가계금융으로 눈을 돌린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 채권이 휴지조각처럼 된 뒤의 일이다. 2000년부터 아파트담보대출 및 직장인 신용대출을 늘리면서 가계금융은 노다지로 떠올랐다.

국민은행의 합병 이후 공격적 영업전략은 이들의 시장쟁탈전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은행은 예상과 달리 남아도는 인력을 정리하는 대신 오히려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김정태 행장은 “전국 어디서나 국민은행 간판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은행의 확장전략에 위협을 느낀 다른 은행들도 올해 가계대출 확대에 매달릴 것으로 보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이미 주력상품인 주택담보대출의 한도를 담보가액의 100%까지 파격적으로 높였다. 한미은행도 전체 대출금중 가계여신 비중을 현재의 27%에서 2004년까지는 50%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가장 까다롭던 은행권의 신용대출 금리는 우량고객의 경우 7%대까지 떨어졌다. 한빛은행처럼 신분증만으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곳이 생겼는가 하면 대부분의 은행들이 인터넷 대출신청에 대해 0.5%포인트의 추가 금리혜택을 주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대출자산의 절반을 기업대출에 충당했던 보험사들도 가계대출 쪽으로 급선회했다. 보험계약자라는 안전한 시장을 노린 것이다. 은행에 비해 금리경쟁력이 앞서지는 않지만 계약자 중심의 편리하고 신속한 대출서비스로 승부를 걸고 있다. 학자금대출 사장님대출 자동차구입자금대출 등 용도별 세분화된 상품도 내놓았다.

▽카드 캐피털의 수성(守城)〓여신전문업체를 대표하는 카드 캐피털업체들은 은행권과 서민금융업체인 금고와 신협의 협공을 당하는 형국.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액이 크게 늘고 소액 대출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지난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카드 캐피털 업계는 은행권이 소비자금융 시장에 밀려오더라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은행이 자기자본비율 등 각종 건전성 지표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위험관리에 한계가 많아 우량고객 대상의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이 때문에 카드 캐피털측의 전략은 은행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 서비스 를 제공하고 제도권에서 소외시킨 고객들을 주요 티깃으로 삼는 것이다. 심사나 채권추심 등에서만 우위를 지켜간다면 금리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사의 최대 강점은 신용카드 거래(할부거래) 정보를 통해 고객신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 이 때문에 대출편의를 높이면서도 연체율을 한 자릿수(2001년 9월 말 기준 4.2%)로 낮추는 등 관리에 성공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최근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대출 등 초신속 서비스를 개발, 시장을 키워나가고 있다.

▽서민금융기관의 분투〓금고 신협은 각각 총 자산규모가 20조원대로 중형 시중은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은행권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개인 자영업자 중소상인 중소기업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금고연합회 조정연 과장은 “신용상태가 비교적 불량하지 않아 금고와 거래할 수 있지만 정보부족으로 사채시장을 찾고 있는 고객을 끌어오는 것이 당면 목표”라며 “연체율을 20%선에서 유지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신협은 2003년까지 유지되는 예금이자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큰 강점.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업무가 단순하고 일반관리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금리경쟁력이 거의 은행수준이다. 신협중앙회 관계자는 “일반은행이 시도하고 있는 ‘지역밀착형’ 영업을 신협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말했다. 신협 금고 새마을금고 등 3대 서민금융기관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올 2월 완전 개통하는 금융전산망. 은행 수준의 전산서비스를 받게 되면 시장쟁탈전에서 밀리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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