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빠졌는데 병뚜껑도 못 연다”…비만주사 뒤 ‘근손실 공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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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사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 근육 감소와 무기력 증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사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 근육 감소와 무기력 증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확산 중인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체중 감량 효과 뒤에 ‘근육 감소’ 논란을 낳고 있다. 체중은 줄었지만 병뚜껑을 열기 힘들 정도로 근력이 떨어지거나, 이유 없는 무기력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전문가들은 “체중 숫자만으로 성공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 젭바운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이용자들 사이에서 예상보다 큰 폭의 근육 감소와 피로 증상이 보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30세 여성 샤넬 로빈슨은 마운자로 복용 후 약 45kg(100파운드)에 가까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다낭성난소증후군(PCOS) 증상도 개선됐지만, 최근에는 일상적인 피로감과 근력 저하를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병뚜껑을 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손 힘이 약해졌고, 이유 없이 몸이 차갑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단순 체중 감소 이상의 문제일 수 있다고 본다. GLP-1 계열 약물이 지방뿐 아니라 근육, 뼈, 수분 등을 포함한 ‘제지방(lean mass)’까지 함께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체중 감량 성공”만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

미국당뇨병학회(ADA) 분석에 따르면 일부 이용자는 최대 10% 수준의 근육량 감소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연구진은 이를 수년간 진행되는 자연 노화 수준의 근육 감소 속도와 비교하기도 했다.

문제는 감소 속도다. 일반적인 식이조절 과정에서도 지방과 근육은 함께 줄어들 수 있지만, GLP-1 계열 약물은 짧은 기간 체중이 급격히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근육량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면 무기력, 균형감 저하, 기초체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의 대니얼 그린 연구원은 WSJ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만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노쇠를 유도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체중은 줄었지만 몸이 약해지고 무기력해졌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근육 감소 속도를 상당 부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제품 상자에 ‘반드시 근력 운동과 함께 복용해야 한다’고 적어야 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제약사들은 비만 치료제는 식이조절과 운동을 포함한 장기적인 체중 관리 계획 안에서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젭바운드 제조사인 일라이 릴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가이드라인 역시 약물 사용 시 신체 활동 증가를 함께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지속 가능한 체중 감량은 단순히 체중계 숫자 이상의 문제”라고 밝혔다.

또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임상시험에서 일부 제지방 감소는 확인됐지만 지방 감소 폭이 훨씬 더 컸다고 설명했다. 노보 노디스크 측은 위고비 임상에서 나타난 근육량 변화 역시 약물 특이 부작용이라기보다 체중 감량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변화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라이 릴리는 지방 감소량이 제지방 감소량보다 약 3배 많았다고 밝혔다.

● “살 빠진 몸”보다 중요한 건 근육과 체력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체중 숫자 중심’ 다이어트 문화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몇 kg을 감량했는지가 핵심 지표처럼 여겨졌지만, 실제 건강은 지방·근육·체력·대사 상태가 함께 유지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일부 이용자들은 약 복용 이후 운동을 중단하거나 충분한 단백질 섭취 없이 체중 감량만 시도했다. 미국 덴버의 30세 여성 레이나 킹스턴은 젭바운드 주사 이후 극심한 피로감 때문에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근육 유지나 근력 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결국 약 복용 두 달 만에 중단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50대 이상 고령층이나 골다공증·활동 제한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근육 감소 위험이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근육량 감소가 낙상과 골절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타대의 카츠 후나이 교수는 “근육량 감소는 이동 능력과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안전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빠른 체중 감량 수단’처럼 소비되는 현상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린 최근 분석에 따르면 GLP-1 계열 약물 복용 후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속도는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감량한 사람들보다 최대 4배 빠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약을 끊은 뒤 다시 늘어난 체중 상당 부분이 근육보다 지방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대니얼 그린 연구원은 “사람들은 체중이라는 숫자를 쉽고 빠른 결과 지표처럼 여긴다”면서도 “실제로 중요한 것은 지방과 근육량 변화지만 이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MRI 같은 비용이 큰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셰필드의 34세 여성 그레이스 파킨은 마운자로 복용 후 약 57kg(125파운드)을 감량했지만, 이후 “몸 안쪽부터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체중 감량 자체는 가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여성이 특히 약물 부작용에 취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설사, 편두통, 드물게는 췌장염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 건강과학 대학병원 연구진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체중 감량 약물에 대한 이상반응, 특히 근육 손실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이나 당뇨 진단 없이 미용 목적 등으로 GLP-1 계열 약물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FDA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신규 오젬픽·마운자로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제2형 당뇨 진단 이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이나 당뇨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감량’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전문가들은 보다 정교한 복용 가이드라인과 근육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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