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빙하에 검출기 5800개… 우주 기원 단서 ‘중성미자’ 찾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13일 04시 30분


관측 장치 ‘아이스큐브’ 업그레이드
얼음 속 이차입자로 에너지 역추적
검출기 600개 추가해 범위 넓어져
한국 연구팀 2곳 데이터 분석 참여… 성균관대 학생들 검출기 제작 주도

2km 두께의 남극 얼음 아래에서 우주의 기본입자인 ‘중성미자’의 비밀을 밝히는 거대 과학실험 장치 ‘아이스큐브(IceCube)’가 가동을 시작한 2011년 이후 약 15년 만에 업그레이드됐다. 중성미자의 흔적을 포착하는 초고감도 검출기가 기존 5160개에서 약 5800개까지 늘어났다.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 있는 아이스큐브 연구소 전경. 아이스큐브 협력단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 있는 아이스큐브 연구소 전경. 아이스큐브 협력단
한국 과학자들도 포함된 국제 공동프로젝트 팀인 아이스큐브 협력단(IceCube Collaboration)은 12일(현지 시간)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 위치한 아이스큐브가 업그레이드를 마쳤다고 밝혔다. 2019년 미국 국립연구재단(NSF)의 업그레이드 예산 승인 이후 7년 만이다.

● 깊이 2.4km 구멍 6개 뚫어 검출기 600여 개 추가

중성미자는 우주의 기원 등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줄 단서로 꼽히지만 연구하기엔 매우 까다롭다. 질량이 거의 없고 전하도 띠지 않아 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거의 없어 ‘유령 입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검출이 어렵다. 중성미자는 이미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4번이나 안겼지만 아직도 밝혀낼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를 간접적으로 찾아낸다. 아이스큐브는 남극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거대하고 순수한 얼음층을 덫처럼 이용한다. 중성미자가 매우 낮은 확률로 얼음 입자와 부딪쳐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이차입자(secondary particle)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중성미자 충돌로 나온 이차입자의 속도가 얼음을 통과하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면 희미한 빛이 나오는 ‘체렌코프 현상’이 일어난다. 체렌코프 현상으로 발생한 빛을 관측해 충돌한 중성미자의 에너지와 날아온 방향을 역추적하는 원리다. 아이스큐브 협력단 소속 한국 연구자인 하창현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는 “항공기가 음속을 넘어설 때 음파가 압축되면서 발생하는 ‘소닉붐’의 파동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검출기 설치 범위가 넓고 촘촘히 배치될수록 중성미자의 특성을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아이스큐브에 매설된 기존 검출기는 5160개다.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600개 이상의 검출기가 추가됐다.

업그레이드는 고온·고압수 드릴로 남극 얼음에 약 2.4km 깊이의 구멍을 뚫은 다음 검출기와 교정장비 등을 긴 줄에 매달아 내려 고정하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한번 검출기를 매설하면 회수는 불가능하다.

검출기가 달린 줄을 작업자들이 얼음구멍에 천천히 밀어넣고 있다. 미국 국립연구재단(NSF) 제공
검출기가 달린 줄을 작업자들이 얼음구멍에 천천히 밀어넣고 있다. 미국 국립연구재단(NSF) 제공
6개의 줄마다 약 100개의 검출기가 배치됐다 검출기당 다양한 크기의 광센서가 1개에서 많게는 24개까지 뭉쳐 있다. 기존 검출기보다 감도가 2∼3배 높다. 새 검출기는 기존 매설 구역보다 깊은 곳에 더 촘촘히 배치됐다. 얼음의 특성이 더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구역에 검출 범위를 확장한 개념이다.

업그레이드 시공은 완공까지 총 세 번의 겨울에 걸쳐 10주씩 진행됐다. 앞서 두 번의 겨울에는 드릴 장비와 작업 캠프 준비가 이뤄졌고, 올겨울 10주 안에 얼음 구멍 시추와 검출기 매설이 한 번에 완료됐다. 시추 과정에서 빙하 속 생명체 흔적을 찾기 위한 샘플을 채취하고 지진계도 2대 설치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설치된 지진계다.

전체 사업 기간은 7년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남극 출입이 금지되면서 3년 지연됐다. 하 교수는 “전체 예산이 540억 원 정도지만 이는 하드웨어 비용만 산정한 것이라 실제 비용은 더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업그레이드 계획인 ‘아이스큐브 젠투(Gen2)’는 기존 아이스큐브 규모를 확장해 부피를 8배 늘린다. 이번 업그레이드는 Gen2를 위한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Gen2 소요 예산은 이번 업그레이드의 10배로 예상된다.

● 한국 학생들, 검출기 제작 주도

업그레이드된 아이스큐브에는 한국 연구팀 두 곳이 참여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진행한다. 학생 6명을 포함해 총 8명 규모다.

하 교수 팀은 중성미자 진동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실험에 주력한다. 중성미자 진동은 중성미자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계속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진동 관측을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성미자 3종의 질량 순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창동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팀은 아이스큐브를 통한 초고에너지 중성미자 관측과 고에너지 감마선 관측을 결합해 우주의 기원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중성미자가 지구에 도달한 과정을 추론하면 아주 먼 우주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낼 수 있다.

업그레이드의 핵심인 검출기 제작에는 성균관대 학생들의 기여가 컸다. 노 교수는 “수년간 진행된 검출기 제작 및 테스트에 학생들의 땀과 노력이 많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유럽 지중해 바닥에 설치된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 검출기(KM3NeT)’,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중국의 주노(JUNO), 일본의 슈퍼 가미오칸데, 미국에서 건설을 추진 중인 듄(DUNE) 등도 아이스큐브와 비슷한 방식으로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대형 장비다. 얼음 대신 물이나 기름, 액체 아르곤 등 다른 물질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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