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정’의 한돈양념구이. 250g에 2만1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서울 마포구 합정동은 서울 서부 지역의 허브다. 지도로 보면 도시의 가장자리에 애매하게 걸친 동네 같지만, 실제 생활 동선에선 중심을 차지한다. 영등포와 구로구를 잇고, 인천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받아 안으며, 은평·마포구와 통한다. 합정은 오래전부터 직장인들의 약속 장소로 각광을 받았고, 생활권 교차로 역할을 했다. 그 합정동 골목에, 세월을 묵묵히 쌓아온 노포 한 곳이 있다. 숯불갈비 전문점 ‘양화정’이다.
양화정은 올해로 한자리에서만 36년째 영업 중이다. 합정동의 지형과 상권이 상전벽해처럼 바뀌는 동안에도 이 집은 간판을 바꾸지 않았고, 트렌드를 곁눈질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한 가지를 단단히 붙들었다. 손님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다.
이 집 돼지갈비(한돈양념구이)는 특히 매력적이다. 보기에도 빛깔 좋은 갈빗살에 촘촘하게 빗금 모양의 칼집을 넣었는데, 양념이 겉도는 법이 없다. 석쇠 위에 갈비가 올라가면 달큰한 향이 연기와 함께 코끝에 스민다. 양화정은 고기 굽는 일을 손님에게 맡기지 않는다. 찬모가 직접 불 앞에 서서 고기의 결을 보고 불의 세기를 가늠하며 굽는다. 그 감각이 생활의 달인급이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갈비가 맛있게 익으면 찬모가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와 동시에 손님들의 젓가락이 분주해진다. 평소 이 집의 접객 및 서비스 교육이 얼마나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관공서나 병원에서 볼 법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동네 노포에서 발견하는 것도 식객 입장에선 적잖은 재미다.
이 집의 명성을 이끄는 돼지갈비 한 점을 집어 먹어 보면 가장 먼저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이어 탱탱한 탄력이 젓가락을 통해 손끝까지 전해질 정도다. 두툼한 고기는 조금도 질기지 않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올라와 입안에 퍼진다. 양념은 아주 달지 않으면서 침샘을 자극하며 혀에 감긴다. 처음엔 ‘아, 맛있다’로 시작하지만, 서너 점쯤 집어먹다 보면 ‘어, 계속 먹게 되네’로 생각이 바뀐다. 물리지 않는 맛, 양화정 갈비의 힘이다.
정갈한 밑반찬도 이 집의 만만찮은 내공을 잘 보여준다. 샐러드와 미역줄기, 겉절이, 청포묵 등이 주인공 격인 갈비를 잘 받쳐준다. 찬모들은 더 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님상을 계속 살피면서 비워진 반찬을 채워준다. 그 때문에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불필요한 말이 오가질 않는다. 덕분에 손님은 온전히 고기 맛과 동행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평일 저녁에도 이 집은 늘 만석에 가깝다. 회식, 오랜 친구와의 만남, 퇴근 후의 소박한 모임들로 북적인다. 서울의 돼지갈비 성지는 지하철 5호선 마포역 인근의 오랜 노포들이다. 그런데 양화정 앞에서는 그 집들도 긴장을 좀 해야 할 듯싶다. 맛과 서비스의 기본이 단단해서 제대로 먹었다는 만족감을 안겨주는 힘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서 요즘은 초벌과 재벌까지 다 익혀서 나오는 고깃집도 있다. 하지만 양화정은 여전히 숯불 앞에서 시간을 응시하는 식사를 권한다. 일과를 마치고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돼지갈비 한 점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내가 달려온 삶의 속도를 생각하게 된다. 응시와 성찰이라는, 인공지능(AI)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21세기식 낭만을 양화정의 돼지갈비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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