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원 ‘전공’은 뭐지?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도대체 진료과목이 뭐야?”

자전거를 타다 다리를 다친 최석영(가명 ·36) 씨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외과를 찾을 수 없었다. 간판에 ‘OO의원’이라고만 쓰여 있을 뿐 전문진료 과목을 표시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전문의 자격을 가지고도 간판에 전문진료 과목을 적어 넣지 않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의원급 의료기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국 총 2만6217개의 의원급 의료기관 중 전문진료 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은 4527곳이라고 9일 밝혔다.

이 중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개원한 일반의원 2605곳을 제외할 경우 전문의 의원의 19.2%가 전문진료 과목을 표시하는 것을 포기한 셈이다. 전문의들의 전문진료 과목 미표시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심평원에 따르면 미표시 의원은 2005년 3881곳, 2006년 4133곳, 2007년 4337곳 등 매년 증가해왔다.

진료과목별로 보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있는 의원이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전체 미표시 의원의 31.6%에 해당되는 1429곳으로 가장 많았다. 외과 1013곳, 산부인과 460곳, 마취통증의학과는 256곳, 흉부외과는 233곳, 비뇨기과 160곳으로 뒤를 이었다.

현재 의원에 속한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2753명, 외과전문의가 2446명인 점을 감안하면 2명 중 1명꼴로 전문진료 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셈이다.

산부인과의 경우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 2005년 190곳에서 3년 만에 2배가 넘게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대를 나와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다. 이후 지역보건소에 신고한 후 ‘OO의원’ 식으로 동네의원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OO내과’ ‘OOO산부인과’ 식으로 의원 간판을 내려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후 지역보건소에 전문의로 등록을 하고 전문과목을 간판 등에 제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문의 의료수가가 일반의보다 높은데도 불구하고 전문과목 표시를 포기하는 이유는 개원의 시장의 불황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류용태 심평원 자원관리팀 차장은 “예를 들어 ‘흉부외과 전문’으로 간판을 걸면 관련 환자만 찾아오는데 그런 환자는 대부분 큰 병원으로만 몰리다 보니 일부 과목에서 의사들이 영업이 안 돼 전문의 표시를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냥 일반의원으로 표시하면 환자에게 특정질환만 치료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아 내과, 외과 등을 두루두루 진료할 수 있다.

성익제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은 “전문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며 “의원을 하는 전문의에게 환자가 오면 인근 대형병원 시설을 이용해 치료하는 등 종합병원과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전문 인력을 활용하면 대형병원의 인력부족도 해결되고 환자들도 2중, 3중으로 진료를 받는 낭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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