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야구스타에서 어린이집 교사로…日타격왕이 100세 시대를 사는 법[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30일 0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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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는 왕년의 프로야구 스타의 어린이집 선생님 변신이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1980년대~1990년대 초까지 일본프로야구(NPB)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뛰었던 다카자와 히데아키 씨(64)입니다

다카자와 씨는 한국 팬들에게 그리 익숙한 이름은 아닙니다. 하지만 묵묵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1988년에 타율 0.327로 타격왕에 오른 적이 있는 스타 출신입니다. 1987년에는 올스타전 MVP로도 선정됐고, 골든글러브도 3차례나 수상했지요.

한국 선수와의 인연도 있습니다. 선수에서 은퇴한 후 다카자와 씨는 지바 롯데 마린즈에서 주로 2군 타격 코치로 활동했었는데요. 2004년 지바 롯데에 입단한 ‘국민타자’ 이승엽이 그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일본 무대 첫 해 고전했던 이승엽은 시즌 중 2군행을 지시받았는데 그 때 이승엽의 부진 탈출을 도운 게 다카자와 씨였지요.

선수시절 날카로운 눈매의 다카자와 씨(왼쪽)와 1세반 어린이집 담당 교사로 일하고 있는 다카자와 씨(오른쪽). 스포츠호치
선수시절 날카로운 눈매의 다카자와 씨(왼쪽)와 1세반 어린이집 담당 교사로 일하고 있는 다카자와 씨(오른쪽). 스포츠호치


그렇게 한 평생 야구와 함께 살아 온 다카자와 씨는 올해 4월부터 요코하마 시의 한 보육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세 반의 담임선생님이지요. 몇몇 아이들은 그를 ‘아저씨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그의 변신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요.

최근 그는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직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롯데 코치를 마친 뒤 ‘마린즈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야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하면서 남을 인생을 살지 고민하던 때에 아이들과 관계된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집 보조 교사로 일해 볼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자격증이 없으면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한 보육원의 원장이 보육사 자격증을 딸 것을 권했고 그는 곧바로 전문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나이 61세 때였습니다. 60대 신입생의 전문학교 생활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습니다. 전혀 생소한 분야인데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도, 리포트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피아노도 칠 줄 알아야 했기에 따로 개인 레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의 수련을 끝난 후 자격증을 땄고, 마침내 정식 어린이집 교사를 일하게 됐습니다.

그는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야구와 비유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린이집 일도 야구처럼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한 명의 아이를 보살피고 있으면 눈이 닿지 않는 곳은 다른 보육교사가 커버해야 한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60대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그의 변신에 주변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그는 “예전 야구 동료들이나 지인들이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대단하다’, ‘힘내라’, ‘용기를 얻는다’ 등등의 말을 해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건넸습니다. “60세를 넘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냉혹한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다. 인생은 지금부터가 길다. 너무 눈앞에만 얽매이지 말고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선택지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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