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교전에 갈라진 이슬람권… 실리·반미·중립 각양각색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입력 2021-06-10 03:00수정 2021-06-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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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헬난 팔레스타인 호텔 건물. 1964년 아랍연맹 2차 정상회담이 개최됐던 곳으로 아랍권 단결과 반이스라엘 의지를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알렉산드리아=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8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변에 있는 ‘헬난 팔레스타인’ 호텔을 찾았다. 1964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연맹 14개 회원국은 이곳에서 같은 해 창설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승인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권 전체의 지원을 약속했다. 57년이 흐른 지금도 이 호텔은 아랍권 단결을 상징하는 장소로 여겨진다.》

시민 아흐마드 제마 씨(32)는 기자가 묻기도 전에 지난달 10∼20일 벌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교전을 언급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죄 없는 팔레스타인인을 공격했지만 아랍권이 손을 놓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에미리트(UAE), 수교는 안 했지만 친이스라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사우디를 거론하며 “걸프만 왕정국이 이스라엘과 밀착해 이슬람 공동전선이 붕괴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아랍권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뉜다. 이집트와 카타르처럼 자국 영향력을 확대하는 실리 외교의 기회로 삼거나, 이란과 터키처럼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쳐 자국 내 여론전에 사용하거나, 사우디와 UAE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형식적 비판에 나서는 식이다.

이집트와 카타르의 실리 외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집트는 휴전을 중재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모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65t의 구호물자와 식료품을 보냈고 가자지구 재건비로 5억 달러(약 5600억 원)를 내놨다. 이스라엘에 대한 별도의 규탄 성명을 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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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세계 최고 권력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교감했다. 군인 출신인 그는 2013년 쿠데타를 통해 첫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를 몰아내고 집권했다. 2019년 헌법 수정으로 연임 제한을 완화해 2030년까지 사실상의 종신집권 토대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약 6만 명의 반정부 인사가 수감됐다.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줄곧 인권 중시를 강조하며 인권 탄압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과 밀착했던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역시 2003년 집권 후 종신집권을 시도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거세게 비판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휴전을 선언한 지난달 20일 시시 대통령과 첫 통화를 하며 “갈등 중재에 힘써 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카타르 역시 지난달 26일 가자지구 재건에 5억 달러를 지원키로 했고 역시 이스라엘 비판 성명을 내지 않았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카타르는 수니파 국가지만 시아파 맹주 이란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카타르 북부 해안과 이란 남부 해안에 걸친 ‘파르스 가스전’을 공동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2017년 이란과의 밀착을 이유로 사우디, UAE 등으로부터 단교를 당했다. 이후에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줄타기 외교를 통해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 실리 외교 전략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교전 사태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터키·이란, 팔레스타인 지원


각각 튀르크계와 페르시아계로 아랍계가 아닌 터키와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판하는 데 열심이다. 이를 통해 친미 걸프국을 압박하고 역내 패권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속내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팔레스타인에 국제 보호군을 파견하자”고 촉구했다. 4일 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슬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스라엘을 성토했다.

두 나라 모두 방역 실패와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화살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 또한 드러내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9일 기준 터키와 이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각각 530만 명, 298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터키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8.6터키리라로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은 집권 내내 대형 인프라 건설을 통한 성장, 즉 ‘에르도가노믹스’를 추진했다. 일정 부분 효과는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급증하고 만성적 고물가가 나타났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려 쌍둥이 적자와 고물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중앙은행 총재를 밥 먹듯 교체하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달 말부터는 공사비 160억 달러(약 18조 원)의 이스탄불 운하 공사도 시작된다.

2013년 집권한 로하니 대통령은 2년 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와 맺은 핵합의를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핵합의를 파기한 후 보수층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연임 제한으로 18일 대선에 출마하지 않지만 남은 임기 동안 보수 이슬람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란 역시 서방으로부터 오랫동안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아온 탓에 생필품 품귀, 고물가가 심각하다.

사우디·UAE, 형식적 비판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UAE, 무함마드 왕세자 집권 후 ‘공동의 적’ 이란 견제를 위해 이스라엘과 손잡은 사우디 등은 개입을 꺼리고 있다. 두 나라는 지난달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권 최대 국제기구 ‘이슬람협력기구(OIC)’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주민, 영토, 성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집트와 카타르처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직접 지원을 하지 않아 자국 내 보수층으로부터 “형식적 구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왕정인 사우디와 UAE는 하마스 주축이 ‘풀뿌리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주창하는 무슬림형제단임을 문제 삼는다. 무슬림형제단은 미국, 이스라엘 못지않게 왕정에도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가디언은 지난달 17일 “사우디, UAE 언론에서 이스라엘 비판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팔레스타인 지지 일색이던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 소셜미디어에서는 ‘팔레스타인은 내 문제가 아니다’와 ‘팔레스타인은 가장 중요한 문제’란 해시태그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6일 UAE 두바이에 있는 ‘문명의 교차로 박물관’에서는 아예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전시회가 열렸다. 5일 후 UAE는 텔아비브에 개설한 대사관의 공식 운영에 돌입했다. 겉으로는 중립이지만 팔레스타인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알렉산드리아에서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
#이집트#팔레스타인#이슬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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