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100년…시진핑 장기집권 위한 ‘홍색관광’ 열풍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21-06-03 03:00수정 2021-06-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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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인근 샹산완안의 ‘리다자오 열사 능원’. 중국 공산당 설립 이념의 창시자로 꼽히는 리의 동상 앞에 화환과 꽃다발이 가득하다. 중국은 다음 달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리의 무덤 같은 공산혁명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인 샹산완안(香山萬安)의 ‘리다자오(李大釗·1889∼1927) 열사 능원’을 찾았다. 한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을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로 여기지만 중국인은 마오와 함께 반드시 리를 거론한다. 베이징대 교수였던 리는 공산당 창당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로 불린다.》

리의 동상과 무덤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각종 꽃과 화환이 가득했다. 당국 또한 다음 달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이곳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능원 관리인은 “공산당 관련 중요 행사가 곧 열려 능원 전체를 단장 중”이라고 말했다.

공산혁명 성지순례 열기

리의 무덤처럼 공산당 관련 유적지를 여행하는 것을 ‘홍색관광(紅色旅遊)’이라 부른다. 일종의 중국판 혁명 성지순례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집권기인 2004년 처음 시작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여행 수요가 늘어났고, 당국 또한 애국심 고취 등을 위해 홍색관광을 적극 장려하면서 붐을 이루고 있다.

홍색관광 명소는 약 300곳. 특히 인기를 끄는 곳은 마오가 1927년 10월 첫 번째 무장투쟁 근거지로 삼은 장시성 징강산(井岡山), 1931년 공산당이 임시정부를 설립한 장시성 루이진(瑞金), 1935년 마오가 공산당 실권을 장악한 구이저우성 쭌이(遵義), 국민당에 패한 마오가 대장정 끝에 도달한 산시성 옌안(延安)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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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고향 후난성 사오산(韶山)에도 많은 인파가 몰린다. 특히 1951년 박물관이 된 마오 생가는 이미 누적 관람객이 1억 명을 넘겼다. 당국은 최근 보수 공사를 마친 이곳을 재개장했다. 일일 방문객이 1만∼2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허베이성 시바이포(西柏坡) 역시 대표적 성지로 꼽힌다. 1949년 마오가 농촌 사업을 직접 지휘했던 곳이다. 이후 중국 지도자의 시바이포 방문은 ‘낮은 곳에서 인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됐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1991년 시바이포에서 부패 척결 의지를 밝힌 후 대대적인 사정에 나섰다. 후 전 주석 역시 2002년 총서기에 오른 직후 이곳을 찾았다. 올해 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시바이포 공산당원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단합은 쇠처럼 강하다”며 공산당의 내부 결속을 강조했다.

창당 드라마-영화 열풍

공산당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또한 속속 방영되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올해 2∼5월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43부작 역사극 ‘줴싱녠다이(覺醒年代·자각의 시대)’를 방영했다. 공산당 창당 당시 리, 마오, 저우언라이 등 지도부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중국에서 ‘대박’으로 평가받는 전국 시청률 평균 1% 이상을 달성했다. 리의 무덤에서 만난 30대 여성 마(馬)모 씨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드라마를 통해 공산당 역사를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최근 방영된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 당시 주요 전투 등을 다룬 ‘다줴잔(大決戰)’, 1990년대 닝샤후이족 자치구에서 빈곤 퇴치 사업에 나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싼하이칭(三海情)’ 등도 인기를 끌었다.

100주년 당일인 다음 달 1일에는 1921년 공산당 창립 과정을 담은 영화 ‘1921’이 개봉된다. 당시 공산당이 벌인 첩보 작전을 그린 ‘무명’도 최근 개봉했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했다는 뜻으로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빙설장진호’ 또한 곧 개봉한다.

中 MZ세대가 새 소비층

중국 남부 하이난섬의 홍색 관광지 인민해방공원을 찾은 학생들과 인솔자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중국 젊은층이 특히 홍색 관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출처 바이두
주로 공산당 및 국영기업 관계자, 장노년층이 홍색관광을 즐길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젊은층에게도 인기다. 중국판 MZ세대, 즉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는 홍색관광의 주소비층이다.

중국 정보 통계에 따르면 2016∼2020년 홍색관광에서 20∼39세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57.3%에 달한다. 최근 온라인 여행사이트 뤼마마닷컴이 내놓은 자료에서도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전체 관광객의 약 40%를 차지한다.

2012년 말 시 주석 집권 후 맹목적인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첫 세대인 이들은 강한 중화사상을 지니고 있다. 단순 여행이 아닌 자신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홍색관광을 택하고 있다는 의미다.

당국 또한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단조로운 전시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게임, 가상현실(VR) 등 몰입형 체험을 제공하는 유적지가 늘고 있다. 관영 언론 또한 “홍색 씨앗을 뿌리고 유전자를 심는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美中 경쟁 속 내부 결속 다지기


중국이 홍색관광과 관련된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격화한 것과 관련이 깊다.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15억 인구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 공산당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 주석은 현재 중국이 강조하는 주요 성과, 즉 코로나19 방역, 탈빈곤 등 또한 공산당 이념하에 이뤄졌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 공산당과 당 간부들은 말하면 말한 대로 한다”며 “중국 내 56개 민족이 모두 가난에서 벗어났다. 공산당은 약속을 지켰다”고 당의 성과를 주장했다.

이를 감안할 때 결국 홍색관광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오를 추앙하고 공산당 역사와 업적을 강조하는 일은 결국 시 주석 본인의 업적을 부각하는 동시에 마오에 비견하는 새롭고 강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이 된다. 자연스레 자신의 장기집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 주석은 내년에 집권 10년을 맞는다. 중국 내에서는 그가 올해 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와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사실상의 종신 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내년 하반기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덩샤오핑 이후 이어진 ‘최고지도자 10년 집권’의 관례를 공식적으로 깰 것이란 관측이 많다.

마오에 대한 중국인의 향수, 더 강한 중국을 원하는 심리 등을 공산당 창당 100년이란 절호의 기회와 결합시켜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공산당#중국#홍색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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