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누적 체납액을 줄이기 위해 소멸시효 기산점을 임의로 적용해 국세징수권을 부당하게 소멸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고액 체납자 등으로부터 받아야 할 세금 1조4000억 원이 시효 소멸로 사라졌다.
감사원이 12일 공개한 ‘국세 체납징수 관리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세청은 2020년 국회의 공개 요구에 따라 2021년부터 신규 체납액 외에 누적 체납액을 ‘국세통계포털’에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2020년 10월 기준 임시 집계한 누적 체납액이 122조 원으로 확인되자 부실 관리 비난이 우려된다며 ‘100조 원 미만’으로 축소하기로 계획했다.
문제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세청이 국세기본법을 위반하며 누적 체납액을 축소했다는 점이다. 국세청은 각 지방청에 누적 체납액 감축 목표(20%)를 일률적으로 할당한 뒤, 체납자의 부동산 등 재산 압류 해제 시 소멸시효 기산점을 법령에 따른 ‘압류해제일’이 아닌 ‘추심일’ 또는 ‘압류일’ 등으로 소급하도록 지시했다. 국세채권의 소멸시효는 체납자에 대한 압류해제 시 시효가 재개되기 때문에 재산 압류해제를 통한 체납액 감축은 불가능함에도 국세청이 이를 부당하게 처리한 것이다.
특히 고액 및 재산은닉혐의자는 중점 체납관리 대상인데도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자 점검을 지방청에 별도 지시해 고액체납자 1066명의 체납액 7222억 원을 임의로 소멸시효가 지난 것으로 처리했다. 이 중에는 명단공개, 출국금지, 추적조사 등 중점 관리대상 체납자 289명(체납액 2685억 원)이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2021~2023년 3년간 총 1조4268억 원의 국세채권이 위법하게 소멸됐다. 즉, 정상적으로 징수해야 할 세금을 과세 당국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체납 징수 운영에서도 문제가 다수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에서는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위반해 시가 수억 원대의 와인, 명품 가방 등의 압류 자산을 임의로 해제하는가 하면, 국외도피 우려가 있는 체납자의 출국금지를 해제한 사례가 적발됐다.
감사원은 국세청장에게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기산점을 임의 적용해 국세징수권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는 일이 없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또 체납액 축소를 목적으로 한 위법한 목표·방침 수립을 금지하고, 관련자에 대해서는 인사자료 통보 및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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