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왕위 계승해야” 유엔 권고에 日 발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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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전범 1조 ‘남자가 계승’ 규정… 日정부 “부적절한 개입’ 강력항의
산케이 “해당국 역사-전통 몰이해”… 日 반발에 최종보고서에선 삭제

‘남성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한 일본 왕실 규정은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 왕실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하려 했다가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자 최종 보고서에선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성역(聖域)으로 여겨지는 왕실 문제에 유엔이 개입하려 한 데 대해 일본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9일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는 4일 여성은 일왕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한 왕실전범(왕실의 제반 사항을 규정한 문서)에 대해 “특히 우려(concern)하고 있다”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여성도 일왕이 될 수 있도록 수정을 요구하는 보고서 최종안을 제시했다. 현재 왕실전범 제1조는 ‘왕위는 왕통에 속하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돼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주제네바 대표부를 통해 왕위 계승 방식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관련 내용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7일 제네바에서 발표된 보고서에는 해당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파장은 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왕실 제도는 각 나라의 역사와 전통 등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위원회가 이를 거론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위원회가 대상국의 사정, 역사, 전통을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인지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규정이 바뀔 경우 계승 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왕위 계승 1순위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다.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는 2순위다. 나루히토 왕세자에게는 딸인 아이코(愛子·15)가 있지만 여성이어서 3순위는 차남의 아들인 히사히토(悠仁·10)다.

일본 왕실은 일왕과 왕족 20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남자는 6명밖에 안 된다. 일왕의 손자뻘로는 히사히토가 유일한 왕위 계승자다. 당시 그는 ‘일본 왕실에서 41년 만에 태어난 남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여성 왕족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왕족 신분을 잃게 되기 때문에 갈수록 왕실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결혼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몇 차례 있었다. 여론의 과반수가 지지했지만 일본 왕실을 전통의 상징으로 여기는 보수 세력의 반발로 매번 무산됐다.

규정이 바뀌면 왕세자의 딸 아이코가 훗날 왕위를 잇게 되는데 이를 두고도 말이 많다. 왕세자빈 마사코(雅子)가 적응 장애로 12년째 두문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일각에선 마사코 왕세자빈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만큼 일왕이 세상을 떠난 후 나루히토 왕세자가 동생에게 왕위를 양도해야 한다는 ‘양위론’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유엔#일왕#남성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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