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 수준의 ‘농축·재처리’ 확보 못한 韓美원자력협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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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협정이라는 지적을 받던 한미 원자력협정이 4년 6개월 만에 타결됐다. 1972년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를 도입한 뒤 1973년 맺은 한미 원자력협정은 그동안 한국 원자력의 발전 속도와 다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개정이 시급했다. 한국의 오랜 목표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 두 가지였다. 원전 가동을 위한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우라늄 농축이 필요하고,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는 재처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농축과 재처리까지 할 수 있어야 원전수출 경쟁력도 커질 수 있다.

협상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양국이 합의해’ 미국산 우라늄에 한해 20%까지 저농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재처리는 초기 단계만 인정했다. 농축과 재처리의 길은 열어놓되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도록 만든 내용이다.

농축비율 20%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연료로 허용하는 최대치다. 이를 넘어서면 핵폭탄으로 사용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20% 이상을 농축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5위 원전 강국이자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해 왔음에도 일본만큼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발등의 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장기 과제로 넘겨진 것도 문제다. 중간 저장, 재처리, 영구처분, 해외 위탁재처리의 길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내년부터 고준위폐기물 저장소가 포화 상태가 되는 것을 고려하면 안이한 대응이다. 한미 공동으로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방식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연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 1968년과 1973년 협정 개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부여받은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원자력 주권 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5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은 확고한 비확산 원칙하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고 있다”며 “선진적 호혜적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다면 양국의 원자력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빨리 결론을 내리도록 행정부에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번 협정으로 불평등한 부분이 모두 해소됐고 당면과제도 해결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결과가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재처리 연구 자율성, 핵안보 등을 다룰 상설 고위급위원회 구성 정도라면 ‘최상의 한미 관계’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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