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럼즈펠드 “한국 군사지원 부담스럽던 차에 盧당선자가 먼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9일 1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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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02년 대선에서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주창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이를 한미간 안보 분담에서 미국의 이익을 반영할 재조정 기회로 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8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당시 국방부 공식문서에서 드러났다.

노무현 후보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23일 럼즈펠드 당시 장관은 더글라스 페이스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는 한미 관계를 리뷰하길 원한다고 언급해왔다"면서 "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동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먼저 (한미 관계 재정립을) 제안했다면 한반도의 불안을 야기한다고 비난받았을 테지만, 이것은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럼즈펠드 장관의 태도는 뒷날 노무현 정부가 주창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미 국방부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환영했다는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럼즈펠드 당시 장관은 이 문서에서 또 "미군은 한국에 1950년부터 주둔해 있었다"며 "이제 양국 관계를 재조정해서 한국인들에게 (국방에 관한) 부담을 넘겨야 한다"고 썼다. 그는 또 "우리는 한국인들의 눈에 거슬리고(irritating) 있다"며 "미국은 한국에 파견된 군대 규모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은 한국에 대한 국방비 지출과 한국 내의 반미(反美) 감정을 안 그래도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던 차에, 한국에서 먼저 이 문제를 검토하자는 분위기가 일자 미 행정부가 이를 반겼음을 보여준다.

한편 럼즈펠드 전 장관은 8일 발간된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에서 "중국이 외교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를 바랐지만 중국은 오히려 미국을 견제하는데 더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간여하는 6자회담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에 돈과 기름을 주는 대신 외교적인 압력과 금융 압박을 가해야 북한 군부 고위급에서 김정일 정권을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2006년 7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쏘아 올렸을 당시 미사일이 미국 쪽으로 향해 날아올 경우 요격미사일 발사를 준비했다"며 "당시 요격미사일은 발사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북한의 보복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전 장관은 대북 문제에 대해 자신이 이끌던 국방부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이끌던 국무부가 이견을 보였던 상황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라이스 전 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북한 특사는 북한 문제를 국무부 고유의 몫으로 생각했고 국방부 견해에는 전혀 무게를 두지 않았다"며 "라이스와 힐은 북한과 협상을 해서 대량살상무기(WMD)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 지역 문제에 정통한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는 북한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라이스와 힐, 두 사람이 주도하는 북한 문제 접근 방식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부유한 한국에서는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할 것이며 북한이 도발할 경우 추가 병력을 파병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자국의 군대규모를 축소시키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남한의 젊은 세대들이 북한처럼 수용소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잊혀진 전쟁인 1950년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많은 젊은 참전군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한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 정권이 아직도 남한을 흡수해 한반도에 독재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것을 잊어먹고 있는 것 같다"고 썼다. 이와 관련, 2003년 11월 서울 방문 중에 한 행사에서 한 젊은 여기자가 "한국의 젊은 군인들이 왜 지구 반대편인 이라크에 가야 하느냐"고 물었던 일이 있었다면서 "당시 이 질문을 받고 한국전에 참전해 숨진 나의 절친한 친구 딕 오키피가 떠올랐다. 나는 그 기자에게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50년 전에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 젊은 남녀 군인들을 보내야 했느냐'고 반문했다"고 회고했다.

워싱턴=하태원특파원 triplets@donga.com
워싱턴=최영해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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