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우디선 ‘블루투스’로 작업한다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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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시. 텅 빈 해안도로를 고급 승용차 2대가 시속 160km로 달리고 있었다.

두 승용차가 가까워지자 렉서스 승용차 뒷자리의 한 소녀가 BMW를 몰고 있던 후삼 토바이티(23·대학생)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소녀는 눈을 빼곤 온통 검은 베일로 휘감고 있었지만 토바이티 씨는 “저렇게 예쁜 눈을 가진 애도 있구나”라고 감탄했다.

토바이티 씨는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 블루투스(근거리의 컴퓨터와 이동단말기 등을 연결해 실시간 통신을 가능케 하는 기능)를 작동시켰다. 곧바로 블루투스 아이디 ‘스포일드(Spoiled)’가 떴다. 그녀로 확신한 토바이티 씨는 바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워싱턴포스트가 6일 전한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들의 요즘 연애 풍속도다. 미혼 남녀 간의 교제가 엄격하게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 최신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청춘 남녀가 아무도 몰래 연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 사우디에서 여성은 온몸을 휘감는 차도르에다 얼굴에 베일까지 써야 한다. 남녀는 부모가 맺어 준 짝과 결혼해야 하고 친척 관계가 아닌 남녀가 자동차를 함께 탔다가 종교경찰에게 붙잡히면 감옥행도 감수해야 한다.

인구 2700만 명의 사우디에서 지난 5년 동안 휴대전화 소유자가 170만 명에서 1450만 명으로 늘어났다. 휴대전화 보급으로 젊은이들은 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부모 모르게 애인과 통화는 물론 메시지와 사진, 동영상도 손쉽게 보낼 수 있다.

특히 전화번호를 몰라도 근거리통신이 가능한 블루투스가 보편화되면서 젊은이들은 고급 레스토랑에 앉기만 하면 본격적인 ‘헌팅’을 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전엔 고작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시 토바이티 씨와 스포일드의 첫 교신 이후 얘기.

스포일드는 일주일 후 토바이티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무려 3시간이나 통화했다. 이들은 이틀 뒤 만나기로 했다. 오후 10시 한 호텔 일식당에서 가족인 양 행세하며 토바이티 씨는 처음 베일을 벗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서로에게 완전한 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결혼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모가 연애결혼에 반대한다면? 스포일드는 “인샬라(알라의 뜻)”라고 말할 뿐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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