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찢어진 민심’ 어떻게 봉합할까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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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누가 되든 가장 먼저 찢어진 (민심의) 조각들을 주워 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미 시사주간 타임지는 대통령선거 직전 미국의 분열을 걱정하는 기사를 실었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로 생긴 감정의 골이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타임지의 걱정대로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선이 남긴 후유증은 단기간에 아물 것 같지 않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 진영은 이미 오하이오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대선에 최상급 수식어를 유난히 많이 사용했다. 사상 유례가 없는 과열과 혼탁이 판을 쳤고, 가장 많은 네거티브 광고가 범람했다. 선거 막판 양쪽 진영을 합해 하루 900만달러(약 103억원)씩 쏟아 부은 사상 최대의 돈 선거였다.

유권자들도 양 진영으로 팽팽하게 갈라섰다. 여차하면 법정으로 끌고 가기 위해 양측이 동원한 변호사는 2만명에 이른다. 대법원이 승리를 최종 결정한 2000년 대선이 남긴 악영향이다.

이렇다보니 자신들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미 국민의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자신의 표가 정확히 집계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유권자가 절반이나 되고,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6%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들이 너무 정치에 몰입해 지지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타임지 조사 결과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면 향후 4년간 미국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응답한 유권자가 70%나 된다. 이런 상태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승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재선이 유력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왜, 어떤 요인으로 서로를 미워할 정도로 여론이 양극화됐는지 따져보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케리 후보 지지를 천명했던 뉴욕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정책 선택의 문제를 신념의 문제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모든 정책은 선택이다. 민주사회라면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선택한다.

그러나 정책 선택을 신념의 문제로 파악한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된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agree to disagree)’ 민주주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다. 오늘날 유례없는 미국 사회의 분열은 여기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위기다.

상대방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파악한다면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작동하기 어렵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양측은 상대방을,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비열한 짓도 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여길 정도로 불신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사회적 양극화와는 별도로 사람들은 보통 극단을 배격한다. 퓨 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는 공격하되 다른 나라와의 공고한 유대관계를 원하고,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지지하며, 낙태는 합법적이지만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혼재돼 있는 것이다.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선택이 갈릴 뿐이다.

이런 선택의 문제로 나라가 두 동강 난다면 본연을 망각한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 정치가 한국 정치를 닮아가는 것 같다.

김상영 국제부장 yo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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