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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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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대의명분 중 하나는 ‘인권회복’이다. 그런데 그 전쟁으로 인해 생긴 전쟁포로에 대해 미국 스스로 인권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인권과 자유의 ‘수호자’로서 행세하는 미국의 이중적 행태가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포로학대 ‘인권의 나라’에 오점▼
미국의 비도덕적 만행은 백번 질타 당해도 모자란다. 미국은 세계를 향해 무릎 꿇고 용서해 달라고 빌어 마땅하다. 인간의 세계는 동물과 달라야 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류의 역사는 흘러왔다. 이런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세계는 미국에 대해 참회를 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물론 오늘날의 국제관계는 ‘힘’이 지배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미국이 과거의 다른 세계 제국과 달리 인권과 자유라는 가치를 높이 들고 인류의 역사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해 왔음도 알고 있다. 세계의 크고 작은 여러 분쟁지역에서 미국이 ‘힘’으로 안정과 균형을 이루어 평화질서를 구축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나 자국민을 노예처럼 취급하고 학대한 독재자들을 경제제재나 군사개입으로 내쫓고 더 나아진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와 역사에 대한 미국의 그런 공헌은 ‘힘’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힘과 더불어, 비록 완전하지는 않으나 미국이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던 ‘인권’과 ‘자유’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가 인정하고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미국은 건국 과정에서 인디언과 흑인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던 ‘원죄’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인권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에서 벌어진 미군의 만행과 이에 대처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행태는 과거 미국이 보여주었던 기본적인 도덕률을 저버린, ‘비(非)미국적’인 것으로 비치고 있다.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한 대응이 아니라 오로지 힘에만 기대어 사태를 반전시키려는 오만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태가 계속될 경우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은 결국 힘을 잃을 것이고, 이라크전쟁도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국제정치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 내부도 갈기갈기 찢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사회는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찬반 논란으로 이미 상당한 균열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라크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쟁’이 될 것이라는 비판론이 미국 내부에서 비등하던 차였다.
미국으로서는 일종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위기를 전제로 한 대응이 나오지 않으면 사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 국방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한다는 각오로 인권과 자유를 짓밟은 죄과를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라크에서의 평화와 자유 회복이라는 대의명분이 인정될 수 있다.
▼우리도 철저한 조치 요구해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해 놓고 있는 우리로서도 중대사다. 파병은 외교적인 약속인 데다 한미동맹과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포로 학대 문제와 별개로 대처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런 시각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병이 갖는 국가전략적 측면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파병이 국가전략에 관계된 사안이기에 오히려 우리는 미국에 대해 철저한 조치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명분도 살리는 길이다.
박정신 숭실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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