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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23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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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일자리가 어디 갔을까.'
미국 경제전문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3월1일)의 표지 제목이다.
실제 미국은 '고용 없는 성장'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01년 4·4분기(10~12월)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3·4분기(7~9월)에는 8.2%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업률도 덩달아 상승했다. 2001년 11월 5.6%였던 실업률이 지난해 6월에는 6.4%까지 올라간 것. 이를 두고 뉴스위크는 "최강의 미국 경제가 일자리 창출에 허덕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왜일까.
▽외국 노동자와 기계에 빼앗긴 일자리=미국 텍사스의 한 가전업체 프로그래머인 리사 피너(46·여). 그녀는 2002년 말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가 피너씨의 자리를 꿰찬 것.
그녀는 전공을 살려 기술직을 구하려 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만만치 않자 서점이나 병원의 전산 입력직도 알아봤다. 하지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은 해외로 옮겨지는 게 두려웠다. 결국 그녀는 기술자인 남편과 함께 지하철 역내 샌드위치 전문점을 차리기로 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간 30만~60만개 일자리가 해외 노동자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 내 1억3000명의 취업자에 비하면 적은 수치. 하지만 그 숫자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제 전문가들은 2015년까지 1400만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외국인으로 대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의 높은 생산성도 고용 창출에는 부정적인 요소. 미 백악관 스티븐 프리드먼 경제수석은 "1990년대 말 미국 경제가 불황을 겪자 기업들이 적은 인원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했다"며 "그러자 정작 호경기가 되어도 추가 고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지난 5년간 연 평균 3%씩 증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고 JP모건은 분석했다. 이는 1975~1995년 동안 미국의 평균 노동생산성의 2배가 넘는다.
▽대책은 없나=현재 고용 없는 성장은 세계적인 추세다. 올 1월 발표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세계 고용동향'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가 2년간 침체를 극복하고 지난해부터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실업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지난해 실업자 수는 2002년보다 190만명이 늘어난 1억8590만명을 나타내 ILO가 고용동향을 조사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 특히 선진국일수록 실업률은 더 높았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 최영섭 연구위원은 "노동집약적 산업은 이미 70년대부터 아시아로 이전돼 온 것으로 해외 이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제조업 중심으로 부품기업과 첨단기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해외 이전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 댈라스 연방은행의 로버트 맥티어 총재는 21일 텍사스 교수 모임에서 "인건비가 싼 해외로 미국 직장이 옮겨가고 있는 것은 '창조적 파괴' 현상으로 결국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과정에서 경제가 더욱 탄탄해진다"며 "양질의 직업 훈련을 통해 실직자가 더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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