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美경영진 컴백 붐

  • 입력 2000년 11월 1일 19시 00분


‘역시 구관이 명관.’

최근 수익성 악화와 주가 급락으로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미국 기업들 가운데 과거 CEO를 역임했던 경영자들을 찾아 다시 복귀시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역시 경험 많은 인물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

▽컴백하는 CEO들〓과거 CEO를 다시 불러들이는 기업들 중에는 제록스, 루슨트 테크놀러지, 프록터 앤 갬블(P&G), 허큘리스 등 쟁쟁한 이름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떨어지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기존 경영 전략을 대폭 수정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다.

루슨트 테크놀러지와 제록스의 경우 최근 몇 달동안 주가 총액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허큘리스는 10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들 기업은 이같은 위기 때에는 과거의 CEO를 재기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의 내부 상황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찾아내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 시장도 어느 정도 이같은 주장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허큘리스의 경우 1996년 사임하기까지 5년동안 CEO를 맡았던 토머스 고시지 회장을 재기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최근 밝히자마자 주가가 8%나 뛰었다.

지금까지 과거 CEO를 재기용해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 회장이 꼽힌다. 잡스 회장은 1997년 CEO로 복귀, 탄탄한 경영으로 애플 컴퓨터를 이끌어 왔으며 올들어 시작된 기술주 동반 폭락을 겪지도 않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아〓하지만 과거 CEO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과거로의 회귀’는 기업의 미래를 맡길 만한 인재들을 시장이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뿐, 구 CEO의 탁월성을 입증하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 예를 들어 제록스의 경우 리처드 토만 사장이 5월 사임, 전혀 의외의 인물인 앤 멀카히 사장이 후임자로 결정됐을 때 업계에서는 멀카히 사장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했다. 분석가들은 또 과거 CEO들은 현재 표면화된 문제의 일부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들이라고 지적한다.

이번에 새로 CEO로 취임한 제록스의 폴 알레어 회장은 재임시 인력 재편에 실패했으며 경쟁업체들의 막강한 도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기업을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과거 인물이 급변하는 경쟁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기업을 구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많다.

▽CEO 인재풀이 부족하다〓미국의 기업들은 기업의 운명을 맡아줄 경영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그만큼 CEO감이 될 만한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

CEO 전문 헤드헌팅 업체인 크리스천 앤 팀버스(C&T)는 현재 CEO 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재풀에서도 실제로 CEO를 맡길 만한 적격 인물은 2%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C&T의 제프리 크리스천 회장은 “적당한 경영자를 찾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는 만큼 인재는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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