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 폭락 배경-전망]대세하락 접어들었나

  • 입력 2000년 4월 15일 11시 58분


세계증시의 심장인 미국 뉴욕증시의 주가가 연일 급락하며 세계의 투자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14일장에서는 지난 한 달 이상 조정을 받아온 첨단기술주 뿐만아니라 구경제 종목까지 폭락세를 보이며 '블랙 프라이데이'를 연출했다.

다우지수는 장중 한때 722.02포인트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617.78포인트(5.7%)로 낙폭을 줄여 장을 마감했지만 사상 최대의 하락률이라는 신기록을 남겼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도 근래들어 가장 큰 폭인 83.20포인트(5.8%)가 급락했다.

나스닥 지수도 355.49포인트(9.7%)가 폭락하며 주간 낙폭이 1,124 포인트(25.3%)로 늘어나 나스닥 29년 역사상 최악의 한 주를 보냈다.

다우지수 역시 지난 일주일동안 7.2%, S&P500지수는 10.5%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날 노동부가 발표한 3월중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증시에 직격탄을 쐈다. 3월의 CPI가 전문가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0.7%에 달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 예방차원에서 공격적인 금리인상을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팽배했다. 이같은 우려가 고조되면서 첨단종목은 물론 금융주를 비롯한 구경제 종목까지 급락세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이다.

주가와 금리는 철저한 상극(相克)관계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의 통화긴축정책을 도입할 경우 은행들로서는 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로 그만큼 수익이 떨어지게 되며, 수익성 악화는 곧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날 뉴욕증시가 맥없이 밑으로 고꾸라진 것도 바로 이같은 금리인상우려가 투자자들의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류를 제외한 CPI핵심지수가 전문가 예상치의 2배에 달함으로써 급격한 금리인상이 우려된 것이다. 증시에서는 다음달 16일 열릴 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종전대로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해 왔고,이에따라 주가는 움직여 왔었다.

문제는 뉴욕증시가 이미 '불황시장(Bearish Market)'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주가가 단기간내에 15%이상 하락할 경우 이를 대세 하락을 의미하는 '베어마켓'으로 규정한다.

나스닥지수의 경우 이미 지난 한주사이에 1,124 포인트(25.3%)나 폭락한 것은 물론 지난 3월10일의 사상 최고치(5,048.62포인트)에 비해서도 무려 34.2%나 미끄러져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시장불황이 지속될 경우 나스닥지수는 3,000포인트 고지마저 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장중 등락을 이용한 매물이 쏟아지며 지수의 발목을 강력히 잡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13일 장에서잘 나타났다. 이날 나스닥 지수는 개장초부터 상승세를 유지, 연 3일간의 급락세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으나 폐장을 불과 45분 남겨놓고 150포인트 가까이 급락, 결국 92.85포인트 내린 채 마감됐다. 지수상승을 가로막은 저항선이 그만큼 두텁다는 얘기다. 첨단기술주가 중심이 된 나스닥지수는 작년에 86%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수립하며 세계증시의 상승을 견인했었다.

'구경제권'의 전통 종목들도 인플레 우려에 따라 한동안 조정을 받을 공산이 크다. 제조업의 경우 벤처캐피탈과 증시자체에 자금을 조달하는 첨단기업들과 달리 자금조달선이 은행창구에 집중돼 있어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다음주 뉴욕증시가 약세로 출발, 또다시 '블랙먼데이'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로버트 W 베어드의 배리 버먼 트레이더는 "주초 뉴욕증시는 인플레 촉발과 금리인상 우려, 과대평가에 대한 불안감으로 약세장을 연출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주말동안 투자심리의 변화와 마진콜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프루덴셜증권의 래리 워치텔같은 투자전략가는 더욱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는 14일 장마감후 내놓은 시장동향 보고서에서 "뮤추얼펀드의 환매와 기관투자가 매도세 그리고 마진콜 등의 여파로 월요일 증시는 더욱 하락할 것이다. 현재 뉴욕증시는 투자자들의 심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어 지지선은 사라지고 저항선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술적 반등은 있어도 대세 상승국면으로 접어들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다만 그간의 하락폭이 적지 않았던 만큼 내주중단기적인 바닥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란 다소 희망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앨런 그린스펀에 이어 두 번째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골드만삭스의 수석전략가(수석 부사장) 조셉 애비 코헨이 이날 장마감후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경기의 호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의 상황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경제 펀더멘털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증시가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강조, 기존의 시장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힌 점은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FRB가 시장의 우려와 달리 연방기금금리(FF)를 종전대로 0.25%포인트만 올릴 경우 시장에는 그동안 나타난 큰 폭의 조정과 함께 커다란 호재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편 다음달 5월16일 열릴 FOMC회의 이전에 발표될 경기지표로는 오는 27일의 노동고용지수(ECI)와 2000년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및 5월1일의 NAPM지수가 중요하다. 이중 그린스펀이 CPI와 함께 인플레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시하는 ECI가 가장 주목된다. ECI가 낮게 나올 경우 FOMC는 급격한 금리인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 낮은 ECI는 곧 인플레와 직결되는 임금상승 압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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