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4개월째 무역흑자에도 엔低 「기현상」

  • 입력 1998년 6월 9일 20시 28분


최근의 엔화약세는 일본의 무역흑자 누적과 동반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일본은 5월로 전년 같은달 대비 무역수지 흑자 증가세가 연 1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일본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천6백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무역수지 흑자는 당연히 엔화강세를 유발해야 하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미 흑자의 증가 때문에 미일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일반론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는 달러강세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투자수익률이 높은 미국으로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또 달러를 손에 쥔 일본의 수출기업들이 엔화로 바꾸기를 꺼리는 것도 엔화 약세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같은 일은 자본거래 규모가 무역거래를 완전히 압도할 만큼 비대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환율결정의 큰 틀이 ‘무역거래’에서가 아니라 ‘자본거래’에서 결정되는 시대가 왔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는 또 일본의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경제관행 제도 유통구조 등에서 뒤진 일본을 시장제일주의의 미국경제가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안이 없다는 것.

일본 대장성과 미국 재무부가 수차례 ‘구두 개입’을 했지만 경제기초여건(펀더멘털)에 대한 손질 없이는 엔화하락세를 막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금리인상을 통한 미일 금리차 해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금리를 인상하면 가뜩이나 위축된 일본기업의 투자가 더욱 움츠러들 것이라는 우려가 우세하다.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엔화폭락을 완전히 방치한 뒤 새로운 균형점에서의 안정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일본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을 고려할 때 함부로 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못된다는 데 일본의 고민이 있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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