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경제개발 아버지」서 「부패 독재자」 전락

입력 1998-05-21 20:49수정 2009-09-2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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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식민지군(軍) 하사관에서 2억인구를 다스리는 인도네시아공화국의 32년 재임 7선 대통령으로….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에서 아마도 금세기 마지막이 될 ‘시민혁명의 타도대상’으로 전락.

21일 물러난 수하르토 전인도네시아대통령(77)의 인생역정은 절대 독재자로 한 세대를 풍미하다 비참하게 사라져간 지도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의 이승만, 필리핀의 마르코스, 동독의 호네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1921년 자바섬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수하르토는 19세 때인 40년 네덜란드 지배하의 동인도군에 들어간다. 이후 일본이 후원하는 군의 소대장을 거쳐 네덜란드 재식민화 기도에 저항하는 독립전쟁에 가담했다. 65년 소장때 군부내 쿠데타를 진압하면서 실세로 떠오른 그는 이듬해 군최고사령관에 오른 뒤 결국 수카르노 초대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빼앗다시피 접수했다.

수하르토는 대통령에 5선된 뒤 “너무 늙었다. 다시는 출마 안한다”, 6선된 뒤 “98년에는 내 나이가 얼마냐. 자연의 섭리에 따르겠다”고 말을 바꾸며 권력을 놓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뜨겁게 타올랐던 반(反)수하르토 운동을 가볍게 누르고 그는 올 3월 7선에 연임, 스스로의 묘혈을 팠다.

그는 21일 사임을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고통받는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철저히 버림받고 있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19일 ‘조기총선 후 대통령직 사임’ 카드를 내놓으면서 “내가 무작정 물러나면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협박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때는 제삼세계 연합체인 ‘77그룹’의 지도자였으며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선창하며 개발독재의 마차를 이끌어 ‘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그였지만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간명한 명제를 잊고 있었다.

96년 부인 시티 하르티나와 사별한 그는 이제 자신의 운명은 물론 ‘인도네시아 주식회사’를 말아먹다시피 한 여섯 자녀 등 일가의 앞날까지 ‘바람앞의 등불’로 만들었다.

이미 그를 재판에 회부하고 형사처벌한 뒤 약 4백억달러(약 57조원)로 추산되는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쩌면 국민을 자신의 가족이나 신민으로 간주하고 함께 먹고사는 원시적 ‘가족경제’ 개념을 강조했던 수하르토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요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형적 서구 자본주의의 요구 앞에서 그는 충돌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늙은 지도자’였다는 평도 있다.

자진 사임으로 ‘명예로운 퇴진’을 노리고 있지만 그에게 넌더리를 내고 있는 국민이 이를 용인해 줄지 알 수 없다. 그가 재판정에 서거나 망명한다고 해도 이제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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